현대 삼성등 10대그룹은 과학기술처가 연내 발족예정인 고등과학원의
연구비 확보를 위해 3백억원의 기금출연을 요청한 것을 놓고 무척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이는 과기처가 오는 10월 발족될 예정인 고등과학원의 연구비 재원용으로
이들 "재계 빅10"에게 총 3백억원을 분담해서 내 달라고 "간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근모과기처 장관은 이와관련,오는 20일 호텔 신라에서 현명관삼성
비서실장 박세용현대 종합기획실장등 10대그룹 기조실장과 만나 기금출연
문제를 협의키로 했다.

과기처는 연초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될 수 있는 세계적인 기초과학
연구소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보고 고등과학원 설립을 추진해왔다.

기금출연 요청은 과기처가 직접 나서지 않고 대신 고등과학원 설립의
실무작업을 맡고 있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비자금사건이후 정부가 기업들로부터 돈을 걷는 것에 따른 부담을
의식해서다.

KAIST관계자들은 최근 10대그룹의 총수와 최고경영자들을 만나 "기금
출연의 불가피성"을 설명하느라 발벗고 나서고 있다.

그러나 과기처로부터 기금출연 요청을 받은 해당그룹들은 벙어리
냉가슴 앓는 듯한 분위기다.

고등과학원을 만들겠다는 명분에는 동감하지만 경기가 급격히 나빠지고
있는 상황에서 거액을 선뜻 내기에는 "곳간"사정이 여의치않다는 게 이들
그룹들의 속내인 것이다.

A그룹관계자는 "고등과학원을 육성하려는 정부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수출부진과 채산성악화로 투자를 줄이고 거뿜제거를 위해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는 상황에서 거액을 내기는 쉽지않다"고 지적했다.

이번 기금출연 요청은 사실상 "준조세"에 해당한다고 보는 시각도
재계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기금출연에 대한 10대그룹의 분위기가 이같은 상황에서 열리는 이번
기조실장회의에서 이 문제가 어떻게 매듭이 지어질 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의춘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