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MPU분야에 진출키로 한 것은 두 가지 점에서 주목된다.

우선 메모리에 과다하게 걸려있는 부하를 비메모리쪽으로 돌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다시말해 다른 국내 업체와 마찬가지로 삼성반도체의 아킬레스건으로
지적되고 있는 메모리 일변도의 기형적인 사업구조에 대한 일대 수술에
나서기 시작한 것.

업계가 눈길을 주고 있는 또 다른 점은 삼성이 64비트급 MPU시장에
진출하기로 한 것이다.

64비트급 MPU는 지금까지 나와 있는 반도체중 최첨단 제품이다.

이 제품을 생산하게 될 경우 단숨에 비메모리 반도체의 세계 선두그룹에
진입하게 된다.

그러니까 삼성의 이번 제휴는 "반쪽 일등"의 한계를 극복하는 동시에
인텔 등 비메모리분야의 선두업체와 겨룰 수 있는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한 포석으로 평가할 수 있다.

사실 삼성을 비롯한 국내업계는 "비메모리 기술이 없다"는 취약점을
갖고 있다.

국내 업계의 비메모리의 사업비중이 평균 5%대에 머물고 있다는 데서
엿볼 수 있다.

일본 업체들이 메모리대 비메모리의 사업비율을 평균 6대 4정도로
유지하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사업구조다.

국내업계는 이 때문에 "언제 무너질 지 모르는 모래성"(전자산업
진흥회 이상원부회장)과 같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반도체가 잘 나갈때야 "양떼기"의 특성을 가진 메모리를 따라갈만한
품목이 없다.

그러나 요즘처럼 반도체 값이 폭락할 경우 힘없이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게 메모리의 특성이다.

따라서 메모리와 비메모리 사업비율을 균형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반도체 사업의 "ABC"와 같다.

그러나 국내업계는 이 "ABC"를 지키지 못했다.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메모리 분야에 투자와 기술개발을 집중했기
때문이다.

또 기본 설계기술이 없다는 구조적 약점이 국내업계를 상대적으로
기술적 설계 난이도가 낮은 메모리쪽으로 몰아간 것도 한 요인이다.

결국 삼성은 DEC사로 부터 첨단 기술을 "수혈"받음으로써 "최소한
두 분야의 사업비율을 7대 3으로 만들겠다"(이윤우 삼성전자 사장)는
비메모리 육성에 본격 나선 것이다.

삼성의 이같은 계획이 단지 구두선에 머물지 않을 것이란 건 이번
계약 내용에서도 엿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게 삼성브랜드로 제품을 판매하기로 한 것이다.

사실 국내업계가 그동안 해외업체와 맺은 기술도입의 전형적인 방법은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이다.

생산을 한 뒤 남의 브랜드로 판다는 점에서 일종의 하청 생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삼성은 자기 상표를 쓰기로 했다.

물론 삼성의 이같은 방침은 MPU 생산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최첨단
제품을 자기 브랜드로 판다는 점에서 일종의 모험이라고도 할 수 있다.

품질이 뒤쳐질 경우 그동안 메모리에서 쌓은 명성까지 한꺼번에 잃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의 이야기는 다르다.

"남의 상표를 사용하는 소극적인 방식으로는 세계 최고의 업체가
될 수 없다"(김광호 부회장)는 것.

그러니까 비메모리 육성을 위해 "배수의 진"을 친 셈이다.

삼성의 이번 MPU분야 진출은 국내 다른 국내업체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와 손을 잡고 최근 386급 MPU를 개발한
현대전자나 미국 선사와 제휴해 인턴넷용 반도체를 개발키로 한
LG반도체 등이 첨단 비메모리 분야에 진출하게 된 삼성에 자극을
받아 메모리 일변도에서 벗어나기 위한 발빠른 행보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업계가 "메모리 1등 비메모리 꼴등"이라는 오명을 벗어던지고
또 다른 반도체 신화를 이룰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조주현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