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건설산업이 변혁의 고비에 서 있다.

WTO(세계무역기구)체제 출범에 따라 건설시장개방이 진행되고 있고 건설업
면허발급자유화로 업체수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부실공사는 원천적으로 어려워지고 있으며 담합에 의한 나눠먹기식 수주
관행도 사라지는 추세이다.

이같은 변화의 소용돌이속에서 건설업체들은 대대적인 체질개선작업을
벌이고 있다.

앞만보고 달려온 과거의 양적 확대에서 탈피, 질적 성장으로 방향을
바꾸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동안 한국건설업은 외형적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해 왔다.

대한건설협회 집계에 따르면 지난 62년 GDP에서 건설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3.4%에 불과했다.

당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14.7%였다는 점을 감안할때 건설업의
비중은 미미한 수준에 머물렀던 셈이다.

그러나 잇따라 추진된 경제개발계획과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초까지
계속된 중동건설특수이후 건설업의 비중은 급속하게 커졌다.

95년말을 기준으로 건설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GDP의 14.1%에 이르게 됐다.

총 취업자중 건설취업자의 비율도 지난 62년 2.8%에서 95년엔 9.3%로
3배정도 증가했다.

96년 3월말 현재 등록돼 있는 일반건설업체수는 2,929개.

이들 업체의 96년 수주총액은 67조3,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는 건설업이 단순한 "서비스업"이 아니라 제조업과 함께 한국경제성장을
주도하는 양대축으로 부상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처럼 건설업의 몸집은 급속히 커졌지만 성장과정에서 적지 않은 부작용이
따른 것도 사실이다.

공기단축이 지상목표로 부각되면서 철저한 공정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이는 부실시공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74년 발표된 "건설업 정상화 10대방안"으로 신규건설면허 발급이 사실상
중단된후 일부업체들 사이에선 면허대여가 공공연히 이루어지기도 했다.

기술개발로 경쟁력을 높이기보다는 연줄을통해 공사를 따내는 "지름길"을
택하는 풍토 역시 건설업계가 안고 있던 어두운 단면의 하나였다.

요즘 건설업체들이 추진하고있는 체질개선작업은 본질적으로 이같은
부정적인 그림자를 지우고 질적으로 한 단계 도약해 보려는 시도이다.

이는 또 그동안 양적 성장과정에서 축적된 경험을 살려 질적 도약을
이루는게 가능하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건설업체들이 현재 당면한 최우선 과제는 완벽시공이다.

이는 고품질시공이 우선 확보되지 않는한 생존자체가 어렵다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에따라 과거의 "부실추방" 구호가 대개 여론의 질책을 피하기 위한
시늉에 그친 면이 많았던데 비해 최근의 품질시공노력은 조직적이고 광범위
하게 전개되고 있다.

실제 시공을 담당하는 협력업체관리를 강화하는 것도 품질시공을 위한
방편의 하나로 대부분의 업체들이 추진하고 있다.

이와함께 협력업체를 소수정예화하고 이들에 대한 교육을 지원함으로써
부실을 차단하려는 시도도 일반화되고 있다.

건설업체들이 도약을 위해 우선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또다른 전략은
"건설업의 소프트화"이다.

그동안 우리 건설업계의 취약부문으로 자주 거론됐던 설계및 엔지니어링
부문을 강화하는 업체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고 CM(건설관리제도)도입을
앞두고 대형업체들 위주로 CM전담팀을 잇달아 만들고 있다.

이같은 "소프트화"는 시공위주의 양적 성장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판단아래
추진되는 것인 만큼 한국건설업이 도약하느냐 아니면 여기에서 주저 앉느냐
의 여부를 가르는 잣대가 될것으로 보여 성공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건설업은 광범위한 자재, 여러 직종의 전문인력, 다양한 기술등이 동원돼
이뤄지는 종합산업이다.

게다가 단위사업의 규모가 방대하고 개개의 사업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한국건설업은 이제 부실과 담합으로 얼룩진 과거의 오명을 씻고 한 단계
높이 도약하는 전환기를 맞고 있다.

< 이정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