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연막을 쳐놓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원앙이 평아에 대한 경계를 풀고 물어보았다.

"네 마음을 다 마님께 말씀드렸다니까.

원앙이 그앤 대감님의 첩으로는 절대 들어가지 않을 거라고 말이야"

"말은 똑바로 하긴 했네.

난 말이야,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에 가사 대감이 형부인이 죽은 후에
중매꾼을 통해서 나를 정실로 맞아들이겠다고 해도 안 갈 거야.

근데 첩이라니 어림도 없지"

원앙의 얼굴에는 단호한 결심의 빛이 어려 있었다.

"네 말도 맞아. 대감의 첩이나 정실로 들어가면 뭐하니?

세상에 남편 사랑 받으며 오순도순 재미있게 사는 맛이 있어야지.

게다가 가사 대감님은 이제는 남자 구실도 제대로 못한다는 소문이 나
있더라.

원앙이 너를 첩으로 맞아들이겠다고 하는 것도 그저 몸화로로 삼으려고
그러는 걸 거야. 그러다가 말이지."

평아가 말을 이으려다가 쿡, 웃음을 토하며 허리를 꺾었다.

"몸화로? 내, 기가 막혀. 내가 무슨 애완동물인 줄 아나"

원앙이 어깨숨을 쉬며 씩씩거렸다.

평아가 웃음을 삼키며 허리를 펴고 방금 하려던 말을 이었다.

"남자 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자들은 그게 잘 안 서고 안 되니까
아주 이상한 걸 요구하고 그런다더라.

여자 입에다 정액을 쏟아놓고는 그걸 삼키라고 한다나"

"아유, 흉측해"

원앙이 진저리를 쳤다.

"그건 약과야. 여자를 묶어놓고 채찍으로 때리기도 하고 물어뜯기도
하다가 스스로 흥분이 되어서 정액을 질질 흘리기도 한다나"

"근데 넌 어떻게 그런 것들까지 다 아니?"

원앙이 정색을 하고 평아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평아가 멈칫하며 순간적으로 얼굴을 붉혔다.

주인 어른인 가련에게 당한 경험이 은연중에 입밖으로 새어 나온
것이었다.

가련은 평아를 묶어놓고 때리거나 한 적은 없었지만 입으로 정액을
삼키도록 한 적은 두어 번 있기도 하였다.

그때였다.

갑자기 근처 바위 뒤에서 웃음소리가 크게 들리며 습인이 불쑥 나타났다.

"호호호, 무슨 이상야릇한 소리들을 하고 있는 거니?

나도 그 내막을 좀 알자꾸나"

"습인언니, 왜 남의 말을 엿듣고 그래요?"

평아가 비쭉이 웃으며 새침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엿들었다고 그래? 너희들이 하는 말이 그냥 내 귀에 들어온 거지"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