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통신 서울지하철 등 공공기업들이 노사협상을 통해 일부 해고근로자를
복직시키기로 합의한데 대해 재계가 거세게 반발하고 나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경총은 21일 긴급 확대 회장단회의를 끝내고 발표한 성명에서 해고
근로자 복직문제는 노사간 교섭대상이 아니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공공 사업장의 연대파업 움직임이 파국없이 타결된 것을 반기면서도
재계가 이처럼 해직자 복직문제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앞으로 있을
민간기업의 노사협상에서 이 문제가 또 다시 큰 쟁점이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이해된다.

우리는 지난해 7월 이해찬 당시 서울시 부시장이 서울 지하철노조의
해고자 복직요구에 대해 "노사간의 다른 쟁점이 해소되면 해고자 복직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가 경솔하다는 여론의 지탄을 받았던
일을 기억한다.

"검토"발언에도 그처럼 지탄이 쏟아졌던 민감하고 중요한 문제가 납득할
만한 설명도 없이 1년도 못돼 슬그머니 복직허용으로 바뀌었으니 재계가
정부에 배신감을 느끼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고 하겠다.

해고자 복직문제는 그동안 불법 극한투쟁 <>해고 <>복직 요구 <>복직후
다시 강경투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로 노사 모두에게 뜨거운
감자였다.

이 문제는 "법원의 판결에 따라야 하며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수 없다"는
사용자측의 원칙고수에 밀려 지난 수년간 수면하로 잠복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번 공공사업장 노사협상에서 복직허용으로 결말이 남에 따라
다시 핵심 현안으로 불거지게 된 셈이다.

특히 민노총계열 사업장들은 해고자 복직문제를 둘러싸고 첨예한 대결
국면이 예상되기도 한다.

재계에 대해 면목이 없게 된 정부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알아서 할 일"
이라며 얼버무리고 있지만 이 문제를 다루는 데는 몇가지 뚜렷한 원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첫째 아무리 급해도 법과 제도를 지키려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현재 대다수의 해고자들이 소송를 내고 있거나 노동위원회에 재심청구를
해놓고 있는 상태에서 이 문제를 단체 협상테이블에 올려 놓는다는 것은
법과 제도를 무시하는 행위라고 해야 할 것이다.

힘으로 법과 제도를 무력화시킬 요량이라면 애당초 소송이나 재심청구를
할 이유가 없다.

해고가 원칙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라면 복직도 당연히 원칙에 따라야 한다.

둘째 복직문제는 결코 노-정간 정치적 흥정거리가 될수 없다.

정부가 해야할 일은 공정한 중재자로서 엄정한 법집행자의 책무를 다하는
것이지 앞장서 행정의 일관성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다.

이 문제가 잘못 처리될 경우 산업계가 입게될 피해를 생각한다면 경영계를
의식하지 않은 노-정간 흥정은 무책임하다고 해야할 것이다.

우리는 법원의 복직판결을 받은 해직자에 한해 복직을 허용한다는 경영계의
기존 입장을 지지하며 앞으로도 이같은 원칙이 흔들려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해고자 복직문제는 노사협상 대상이 아니라 법집행의 문제인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