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라면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여자대학이고 총장이 모교
출신이자 기독교 신자의 미론 여성이어야 하며 기혼여성의 입학이나
재학중의 결혼이 금지되어온 전통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그것들 가운데 미혼 총장의 전통이 드디 어 깨졌다.

기혼의 장상부총장이 제11대 총장에 선임된 것이다.

이화여대는 1886년5월에 미국 북감리교의 여선교사인 M F 스크랜턴이
서울의 황화방(지금의 정동)에서 단1명의 여학생으로 수업을 시작한 것을
기점으로 출범을 했다.

당시 여성교육을 기피하는 전통적 관념과 서양인에 대한 배타적 성격
때문에 학생 수용이 지극히 어려웠던 사회 여건을 반영해 주는 단적인
증거였다.

그 이듬해에 명성황후로부터 "이화"라는 명칭을 하사받아 교명을
이화학당으로 정하고 초대 학당장에 스크랜턴이 취임하여 한국 최초의
여성교육기관으로 첫 발을 내디뎠다.

명성황후는 한국 여성들이 배꽃같이 순결하고 아름다우며 향기로운 열매를
맺는 사람이 되라는 뜻에서 "이화"라는 명칭을 하사했고 창립자의 정신은
한국적인 것에 대해 긍지를 갖고 그리스도와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완전한
한국여성을 육성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총장이나 학생이 왜 미혼이어야만 했던 것일까.

자기 희생과 사명감, 시대를 앞서 비전을 제시하는 통찰력과 지도력이
요구되는 총장이 가족을 가질 경우에 그 일을 제대로 해 낼수 없다는 것과
재학중에 결혼을 하게 되면 집안일과 육아에 밀려 학업에 전념하기
힘들다는 것이 그 직접적인 이유였다.

이와여대의 이러한 금기는 물론 학칙에 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출범당시 가정에만 얽메이게 되어 있었던 여성의 불리한 사회적 지위를
반영하여 불문율로 지켜져 오던 것이 어느 사이엔가 전통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창립자인 스크랜턴은 물론 1939년 한국인으로 첫 교장에 취임한데 이어
광복후인 46년 종합대학으로의 승격과 함께 총장이 된 김활란 여사, 그
뒤를 이은 김옥길 정의숙 윤후정 총장도 미혼의 불문율을 지켜온 분들이다.

기혼인 장총장의 취임으로 미혼총장의 110년 아성은 무너졌지만 이화여대
출신, 기독교 신자라는 전통은 그대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동안 논란되어 온 기혼자의 입학, 재학생의 결혼 등의 문제에 기혼
총장의 취임이 어떤 영향을 가져다 줄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