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의 탄생과 성장에 얽힌 얘기를 담은 윤병철행장의 에세이집 "하나
가 없으면 둘도 없다"가 출간됐다.

하나은행은 창립25주년및 은행전환 5주년 기념식과 함께 조촐한 출간기념
행사를 25일 오후6시30분 서울 호텔롯데 크리스탈볼룸에서 개최한다.

하나은행의 성장과정을 보여주는 부분을 발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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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지로의 대포소리"

기획팀이 만든 개업식의 하이라이트는 테이프컷이 끝나고 마스코트가 제막
되는 순간 세발의 축포를 쏘아 올리자는 것이었다.

설명이 끝나자 임원들이 불만을 털어 놓기 시작했다.

"은행의 개업식은 엄숙하고 경건한 느낌이 들어야 하는데 쇼처럼 해서야
되겠습니까"

(중략)

나이든 임원들은 대부분 반대, 젊은 직원들은 모두 찬성의견을 내놓았다.

(중략)

"우리 은행은 젊은은행 아닙니까. 개업식도 젊은이답게 젊은사람들이 하자
는 대로 합시다. 잘될 겁니다"

(중략)

개업식이 열리는 날.

"펑! 펑! 펑!"

대포소리가 을지로 네거리에 진동했고 오색꽃송이가 주변거리를 뒤덮었다.

박수소리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 은행이름 "하나"

은행이름을 지을 때 제일 먼저 고려했던 점은 우리말로 할 것인가 아니면
한자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나이드신 분들은 대부분 한자이름을 선호했다.

(중략)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짜냈고 그결과 나온 것이 "하나은행"이었다.

그때 한 직원이 이런 말을 했다.

"지금 하나회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한 마당에 우리은행이 하나은행으로
이름을 정한다면 고객들이 오해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중략)

결국 직원들 모두가 참여하는 투표를 실시했고 "상아"가 근소한 표차로
결정됐다.

그러나 이것도 누구든지 공감할 만큼 흡족한 이름이 아니었다.

(중략)

그러자 세월이 가면 하나회에 대한 관심도 묽어질 것이니 그냥 "하나"로
하자는 의견이 강력히 대두됐다.

곧이어 열린 주주총회에서 "하나"가 우리은행의 이름으로 최종 결정됐다.

<> 금융비리가 없는 깨끗한 은행을 만들자

내가 한국투자금융에 전무로 부임하고 나서 곧바로 터진 금융사건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소위 "장영자 어음사기사건"이었다.

당시 꽤많은 금융기관이 이 사건에 휘말려 휘청거리는 것을 보면서 나는
사기는 당하는 사람이 절반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중략)

당시 들은 바로는 장씨가 우리 회사에도 여러차례 거래제의를 해왔다고
한다.

"K토건에 20억원을 대출해 주면 100억원을 예금하겠다"고도 했다.

(중략)

하지만 우리는 거절했고 그 결과 다른곳에서 500억~600억원씩 부실채권이
생겼을 때도 아무 피해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 직원을 만나나 중역을 만나나 똑같은 은행

우리 은행에는 특별한 사시가 없다.

경영이란 격변하는 환경에 대응하여 그때그때 최선을 다해야 하는 작업
인데, 한 조직이 어떤 시점에 필요한 가치를 사훈이라든가 사시로 정해 두면
변화된 환경에 적절히 대응해야 할 때 그것 때문에 오히려 제약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나은행이 특별히 행훈이나 사시를 정해두지 않은 것은 언제든지 능동적
으로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서이다.

<> 고객이 없으면 은행도 없다

도곡동 하나은행에서는 문을 열면서 어떻게 하면 우리 은행을 잘 알릴까
고민하다가 직원중 한 명이 이런 제안을 했다고 한다.

"이 지역에는 아파트에 새로 입주하는 분들이 많은데 낮에는 남자들이
거의 회사에 나가니 여자가 못박고 싱크대 고치려면 힘들 겁니다"

(중략)

이후 도곡동 하나은행에서는 "우리 은행에서는 여러분의 집에 드릴로 못을
박아드립니다"라는 홍보전단을 뿌리고 전화가 오면 직원들이 돌아다니면서
못을 박아주었다고 한다.

<> 국제센터 14층에 닻을 올린 스카이뱅크

91년엔 부동산 임대가격이 폭등했던 때라 점포 임대비용도 적지 않게
부담스러웠다.

나는 "은행이 반드시 건물 1층에 있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라고 생각했다.

(중략)

그래서 우리는 91년 8월1일 우리나라 은행중 최초로 국제센터빌딩 14층
에 영업점을 차리고 이를 "스카이뱅크"라고 불렀다.

그 건물에 근무하던 분들은 시간이 절약돼 좋아했고 개인고객보다 법인을
상대했기 때문에 수익도 좋은 편이었다.

<> 행장님, 밥 좀 사주세요

전주 하나은행에 갔을 때 여직원 몇명이 나를 보자마자 "행장님, 밥좀
사주세요"라고 졸라댔다.

(중략)

그런데 직원 가운데 한명이 식사도중 느닷없이 "행장님 노래한번 불러
보세요"라고 말하는게 아닌가.

그래서 "밥 먹으면서 어떻게 노래를 부르나"라고 했더니 영업지점장이
"그러면 밥을 먹고 나서 디스코테크에나 가지요"라며 분위기를 그쪽으로
몰아갔다.

결국 자의반 타의반으로 직원들과 함께 디스코테크에 가게 되었는데, 이
소문은 곧 전직원에게 퍼졌고 그뒤부터 영업점을 들를 때마다 디스코테크에
가자는 요청에 시달려야만 했다.

<> 내 인생의 좌우명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일곱번 절을 올리고 세가지 소망을 기원한다.

욕심을 일으키는 모든 감정을 정갈하게 하기 위해 정성스레 절을 올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좋은 지혜를 준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과 이 사회의
모든 지도자들이 이 나라와 사회를 잘 이끌어주기를 바라는 마음, 마지막
으로 하나가족들이 건강하게 잘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기원한다.

<정리=김수언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