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앙이 발광을 하다시피 격렬한 반응을 보이자 원앙의 올케는 몹시
당황해 하며 황급히 도망을 가버렸다.

평아와 습인이 울고 있는 원앙을 달래며 위로하였다.

"왜 저 여자가 나서고 그래? 별꼴이야.

원앙이 너만 마음을 굳게 먹고 있으면 누가 뭐래도 대부인 마님은
네 편일 거야.

그러니 아무 염려 마"

습인의 말에도 원앙은 그저 흐느끼기만 했다.

"그래도 원앙이 넌 행복한 편이야.

누가 나 같은 것한테는 첩으로 삼겠다고 말이나 꺼내기나 하니?

그러니 원앙이 너 이런 마음고생하는거 그저 예쁘고 총명한 탓이겠거니
하고 좋은 방향으로 생각해버리란 말이야.

자꾸 나쁜 방향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이번에는 평아가 정말 원앙이 부러운 투로 말을 하였다.

"그래 맞어. 나도 마찬가지야. 난 말이야. 농담이라도 좋으니 누가
나를 첩으로 삼겠다고 하는 말 한번 들어보았으면 좋겠어"

습인이 씁쓸하게 웃으며 평아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습인 언니는 보옥 도련님의 첩이 된 거나 마찬가지잖아"

평아가 짓궂게 놀려대자 습인이 얼굴이 벌겋게 되어 소리쳤다.

"보옥 도련님은 아직 장가도 안 갔는데 첩은 무슨 첩이니?

평아 너나 가련 대감의 첩이라는 소리 듣지 않도록 조심하려무나"

"왜들 이래요?

내가 듣기에는 둘다 첩이 못 되어 안달이 난 여자들 같네"

원앙이 어느새 울음을 그치고 핀잔을 주었다.

평아와 습인이 머쓱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근처 풀섶에서 누가 불쑥
튀어나왔다.

세 사람은 깜짝 놀라며 몸을 움츠렸다.

"하하, 듣자하니 이야기가 점점 가관이군"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보옥이었다.

"아이구 깜짝이야.

습인 언니도 어디에 숨어있다가 난데없이 나오더니 보옥 도련님도
그런 식으로 나타나고.

오늘 남의 말 엿듣기 시합이라도 하는 거예요?"

평아가 놀란 가슴을 달래려는 듯 심호흡을 하였다.

"남의 말 엿듣기 시합?

글쎄 그런 시합이 벌어졌는지도 모르겠네.

우리 네 사람의 말을 또 엿듣는 사람이 없나 한번 찾아볼까.

저 바위 뒤나 나무숲 속에 숨어 있는지도 모르지.

그러니 우리 아예 이홍원으로 가서 방문을 닫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게 어때?"

보옥은 심심하던 차에 잘 되었다 싶어 세 여자를 이홍원으로 데려가서
일단 차를 대접해주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