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미화해서 말하자면 주경야독하며 동고동락했다 할까.

하여튼 우리 부산수산대 산업대학원 13기 동기생들로서 야학시절에
강의실에서 든 정 때문에 다시 헤쳐모여 그 이름도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삼산악회 (13기라 해서)를 만들어 크고 작은 전국의 명산을 단 한번의
거름도 없이 매월 한차례씩 오르내린 지가 어연 3년이다.

지난 일요일 대운산 산행때 철죽꽃 숲을 허덕대며 오르던 어느 회원이
지난 한주 산행에 빠졌더니만 산에 오르고 싶은건 둘째 치고 사람들이
보고싶어 도저히 견딜수 없어 만사 뒤로 하고 베낭 들쳐메고 따라
나섰노라 했다.

이 얼마나 정이 쩍쩍 붙는 말인가.

늦게 배운 도둑질이 날새는 줄 모른다던가.

중년에 늦은밤 강의실에서 맺어진 새로운 인연의 또다른 소중함에
우린 모두 홀딱 반해있는 것 같다.

"정상이 아직 멀었나" "다 와 간다"를 반복해서 묻고 대답하며 힘겹게
산을 오르던 신출내기 회원들도 이젠 남먼저 갈대능선을 헤치며 정상을
향해 내닫는다.

그 저력으로 우리는 올여름 일본 후지산 5,000m고지를 계획할 정도로
체력과 정신력이 평준화된 딴딴한 멤버가 되었다.

하지만 염불보다 잿밥이라고 산을 오르는 일보다 하산 후의 뒤풀이에
더 매력을 느끼는 회원도 없지 않다.

이른아침부터 온종일을 누가 오라지도 않는데 꼭 거기에 중요한
볼일이라도 있는것처럼 힘겹게 준령을 넘나들다 보면 마지막 하산길에는
파김치가 되어버린 몸을 내던지듯해도 막판의 뒤풀이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날개라도 달린듯 가볍기만하다.

박내완 전무의 애간장 녹이는 창 (서편제)하며 한국의 카사노바 강상순
사장의 아랫도리꼬기 묘기, 청탁불문 두주불사 박내근사장의 술실력은
대작 파트너가 없어 걱정이고, 건반 위의 마술로 온 회원들을 무아의
경지로 빠뜨리는 노기현회장의 뜻밖의 피아노 솜씨하며 뒤풀이 마당엔
제각기 프로를 무색케 하는 일품들이 기염을 토할라치며 얼이빠진
주인장 장사는 뒷전이기 일쑤다.

45명 전원의 기가 막힌 재주를 다 소개할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렇게들 다져지고 다듬어진 건강과 세련된 매너는 새로운 내일을
위한 에너지가 되어 밝고 생동감 넘치는 생활인으로서 우리회원 모두는
각계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음에 긍지를 느낀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