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아리랑의 고향 경남 밀양사람들은 자랑스런 향토기업으로
한국화이바그룹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비록 규모는 중견기업수준이지만 기술력만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이다.

그룹의 한국화이바나 계열사인 한국카본 한국월드스포츠가 만드는 제품은
탄소섬유 유리섬유등 첨단소재인 복합재료를 이용한 것들이다.

생산제품도 항공기조종석 덮개인 캐노피와 날개 동체등 항공기부품에서
부터 고속전철등 수송기기부품 건축용탄소섬유보강재와 경량외장재등
그야말로 21세기를 겨냥한 앞서가는 제품들이다.

제품뿐 아니라 이 회사가 사용하는 생산설비나 시험장비도 대부분
회사가 자체 개발한 것들이다.

닭대포나 40m고공낙하장치 날개제작설비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닭대포는 캐노피의 강도를 테스트하는 설비로 압축공기를 이용한
대포속에 닭을 넣어 시속 2백마일로 발사해 캐노피와 충돌시킨뒤
표면의 충격과 파열상태를 검사하는 설비이다.

또 40m고공낙하장치는 이 회사가 생산하는 헬리콥터용 의자가 헬기추락때
조종사가 받는 충격을 얼마나 줄여주는지는 검사하는 설비이다.

한국화이바그룹은 세계적인 항공기업체인 보잉이나 맥도널더글러스
벨등으로부터 부품에 관한 품질인증을 받아 이들업체에 수출하는 저력도
갖추고 있으며 탄소섬유나 유리섬유등 복합재료기술은 미국 일본등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이같은 기술력을 지닌 그룹을 일궈낸 조용준회장(67)은 뜻밖에도
초등학교졸업이 학력의 전부이다.

전북 담양출신인 그는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초등학교를
졸업한 14세때에 개인병원의 조수로 사회생활에 뛰어들어야만 했다.

지식열에 불타던 그는 병원에 꽂혀있던 의학과 과학서적으로 배움에
대한 갈증을 풀었다.

해방후 부모를 여의고 부산으로 건너간 그는 밀수품으로 나돌던
일제낚시대에 매료돼 이를 국산화하기로 결심하고 사업에 나선다.

서점을 뒤져 소재와 가공 열처리등에 관한 책을 구해 독학으로 기술을
깨치고 병원장을 설득해 자본을 출자토록해 만든 기업이 62년에 출범한
엔젤사였다.

하지만 기술개발투자에 대한 중요성을 역설하던 조씨와 현상유지를
주장하던 병원장은 끝내 의견충돌로 결별했다.

66년에 은성사라는 낚시대 업체를 공동창업해 세계시장 석권에 나섰으나
역시 같은 문제로 논란을 빚은끝에 또다시 갈라섰고 72년에 한국화이바를
창업, 오늘에 이르게 된다.

조회장이 심혈을 기울이는 분야중의 하나는 건축용 탄소섬유보강재.

현재 한국카본에서 생산하는 이 제품은 교각 상판 기둥 터널 사일로등
대부분의 건축구조물에 적용하는 보강재로 인장강도가 철의 10배에 달해
탁월한 보강능력을 자랑한다.

또 비중은 철의 4분의 1에 불과, 매우 가볍고 내구성 방수성과 간편한
시공성으로 시장성이 대단히 유망한 품목으로 꼽힌다.

한국카본은 이 제품의 물성이 그동안 주수입품이던 일본 도넨이나
미쓰비시제품보다 뛰어나다고 자평하고 있다.

탄소섬유보강재와 인쇄회로기판원판등을 만드는 한국카본은 그룹내에서
알토란같은 회사로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 4백86억원에 56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고 올해는
6백48억원에 73억원의 순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모기업인 한국화이바는 항공기부품 수송기기부품 방산제품 풍력발전체계
신소재 외장판넬 등을 생산하며 한국월드스포츠는 골프채와 테니스라켓 등
스포츠용품을 만든다.

그룹의 작년 외형은 1천억원 올해는 1천2백억원으로 잡고 있다.

3만여평 규모의 공장을 하루에 3바퀴이상 도는 그는 작업복차림에 손에
항상 메모지와 연필을 들고 젊은 박사들과 항상 기술문제에 관한 토론을
벌인다.

한국화이바의 경영은 아들인 조문수사장, 한국카본은 전문경영인인
이종균사장에게 맡기고 있지만 기술문제에 관한 것은 자신이 직접 챙긴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기술점프에 나서야합니다.

산업재료의 발전단계는 1단계인 철 2단계인 알루미늄 3단계인 복합재료로
진행되고 있는데 늦게 출발한 우리나라는 1단계에서 3단계로 직접 점프를
해야만 선진국과 대등한 경쟁을 할수 있지요"

그는 철로 만든 자동차의 무게가 10t이라면 알루미늄은 5.5~6t 복합소재는
3~3.5t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이 차이는 차량의 속도는 물론 연료소비등 경제성에도 큰 차이를
낳는다고 말한다.

따라서 복합소재 개발없이는 산업발전을 생각할수 없는 시대가 닥치고
있다며 업계는 물론 관계에서도 이의 중요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낙훈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