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원 < 한보경제연구원장 >

최근 들어 삶의 질이 자주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본다.

정부쪽에서도 민간에서도 생활의 질을 높여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삶의 질이 어떤 의미를 지니기에 갑자기 시대적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일까.

경제개발의 궁극적인 목적이 국민 모두에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데
있을진대 성장에 의한 경제규모 확대도 중요하지만 질적인 측면에서 경제
사회의 수준향상이 요구된다.

우리는 지금까지 높은 경제성장률 달성에 진력해온 나머지 질적인 측면을
소홀히 다루어 왔다고 생각된다.

브론펜브레너 교수는 일본의 경제성장을 분석하면서 <>현재와 앞으로의
생활수준 <>생활수준의 안정 <>소득과 부의 공정 분배 그리고 <>신체적
정신적 건강및 자유 등이 국민들의 경제 복지 수준을 가늠하는 주요 변수가
된다고 설명한 바 있다.

피구나 틴버겐등 유명한 경제사상가들도 국민 복지 증진을 위한 기본조건
으로 경제성장과 안정, 경제적 자유창달과 경제정의 실현, 그리고 문화의
발전과 사회적 평화의 달성등을 열거한다.

여기서 우리는 국민들이 느끼는 복지가 국민소득의 증가, 물가의 안정,
소득이나 부의 분배구조로 대변되는 경제의 성장 안정 형평에 국한되지 않고
건강 자유 평등 등 경제외적 복지와도 밀접하게 관련되고 있다는 점에 귀를
기울이고자 한다.

더이상 경제성장에만 매달릴것이 아니라 이제는 경제사회의 질적수준향상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비단 물질적인 부의 풍요에 그치지 않고 자유롭고 건강한 삶을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안전한 생활환경에서 국민들이 문화적 창조적 삶을 구가할 수
있도록 발상과 사고의 일대전환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삶의 질은 생활의 주요 측면과 관계된다.

기본적으로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여 소비 수준이 제고되고 저축 여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경우 경제적인 기본 조건은 어느정도 충족되었다고 판단된다.

한마디로 말하여 생활의 질은 안전한 환경에서 국민들이 누리는 안정감,
여유, 그리고 쾌적재(Amenity)의 향유라고 할 수 있다.

더 짧게 표현하면 생활수준의 선진화라고 요약된다.

독일이나 일본 영국등 선진국에 가서 우리가 감지할 수 있는 국민생활의
안정, 쾌적한 환경, 잘 짜여진 생활과 복지관련제도 등이 충분조건으로
제시된다.

물론 서구선진국에도 문제는 있다.

경제의 활력이 저하되고 실업자가 증가되면서 사회복지제도가 주는 부담이
점점 무거워지고 있다.

그러나 물질적으로 풍요를 덜 누릴지라도 거기에는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삶의 질은 경제의 성장과 안정 뿐만 아니라 형평증진과 사회
복지제도의 구비를 통한 경제사회의 안정을 요구한다.

나아가서 이는 건강한 삶, 교육받을 권리보장, 안전한 근로환경, 주거의
안정, 지역사회 단위의 문화창달, 지적.정신적 생활의 풍부, 그리고 여가
선용 등 생활의 제반 측면과 관련된다.

일부 부유한 계층에 한정되어 시작된 현상인지는 몰라도 지금 우리사회는
소비붐이 크게 일어나고 있고 전국적으로 그 전시효과가 확산되고 있다.

물가안정이 위협을 받고 있고 국제수지가 흔들리는 가운데 생활의 불안
요소 또한 도처에 잠재하고 있다.

혹자는 그렇기 때문에 안으로는 성장잠재력을 배양하고 밖으로는 국제
경쟁력을 길러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도모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사고는 수십년에 걸친 고도성장 과정에서 우리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듯하다.

정책입안자도 경제전문가도 일반국민도 두자리 숫자의 경제성장률에 익숙한
나머지 경쟁적으로 높은 성장률을 희망하고 있다.

날로 격렬해지고 있는 경제전쟁시대를 맞아 경쟁력 강화가 중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를 위한 경쟁력강화인가?

사회구석구석에 불안의 요소가 숨어 있고 생활환경이 점점 열악해지고
있다.

더욱이 인간성마저 상실되고 있는 현실에 주목하건대 정책패러다임의 전환
이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선진국에서는 60년대 후반부터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미국의 경우 여러가지 사회병리현상이 경제적 번영에 따른 후유증으로
발생했다고 인식하고 창조성, 여가 등 내면적인 생활에서 자기 충족을
추구하면서 삶의 보람을 느끼려는 국민들이 늘어나면서 과감한 정책전환을
시도한 바 있었다.

이제 우리 국민들도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건강하고 문화적인 삶을
추구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앞으로는 경제의 안정적인 성장과 함께 삶의 질을 배려하는 정책적
노력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경제활동의 수단이자 목적으로서 인간의 잠재능력을 충분히 실현시켜
나가기 위해서도 정책의 중점이 사람에게 두어질 필요가 있다.

국민의 편안한 삶을 보장할 수 있을 때 선진화가 달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삶의질 향상 추구는 우리경제사회가 잃어가고 있는 인간성을 회복
하고 나아가서 한국자본주의를 문명화 선진화하려는 노력이라고 요약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