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상은 아내를 통하여 원앙의 일에 관하여 들었던 터라 가련이
왜 자기에게 집안 형편을 묻는지 그 이유를 짐작 못 하는 바 아니었다.

"얼마 전에 남경에서 편지가 왔는데, 아버님은 심한 천식에 걸려
위독한 상태라고 합니다.

아버님 돌아가시기 전에 저도 한번 내려가보아야 하는데...."

김문상의 얼굴에 수심이 어렸다.

"그럼 여기 장안으로 올라오기는 힘들겠군. 어머니는 어떠신가?"

가련이 김문상의 집안 형편을 동정한다는 듯 무거운 어조로 물었다.

"어머님은 원래부터 귀머거리라 사람 말을 알아 듣지 못하십니다.

게다가 글자도 모르시기 때문에 손짓 발짓으로 겨우 의사 소통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런 사람이 올라와보았자 별 소용이 없겠군"

가련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원앙의 일로 큰 대감님께서 저희 부모님을 불러 올리시려는
모양이지요?"

영국부 사람들은 가사를 큰 대감, 가정을 작은 대감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눈치 빠른 김문상의 질문에 가련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두 분 다 올라올 형편이 안 되니 부득이 제가 원앙을 데리고 남경으로
내려가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버님께서 위독하시다고 하니 어차피 우리 남매는 병문안을 드리러
가야 하고, 원앙이 어려운 집안 형편을 보면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김문상은 이번 기회에 아예 휴가를 얻어낼 참이었다.

"그게 좋겠군. 위독하신 아버지가 원앙을 설득하면 원앙도 차마 그런
아버지의 말을 거역하지는 못하겠지"

"저도 원앙을 데리고 남경으로 내려가는 문제를 대부인에게
말씀드리겠으니 어르신도 잘 말씀 드려주십시오"

가련은 그러겠다고 약속을 하고는 아버지 가사에게로 와 김문상과 나눈
이야기를 보고하였다.

가사는 잠시 생각하더니 자기가 직접 김문상을 만나 보아야겠다면서
그를 부르도록 하였다.

가련은 사람을 시켜 김문상을 불러 가사에게 나아가도록 하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가련은 잠자리에 들어 희봉을 애무하며 원앙의 일에 대해 이것 저것
물어보았다.

원앙이 가사의 첩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다는 대답을 듣고는,
혹시 가련 자기가 원앙을 첩으로 삼겠다고 하면 원앙이 응락을 하지
않을까 생각하였다.

늙어 빠진 아버지보다는 그래도 젊은 내가 낫지.

아버지는 정말 주책이야.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