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동락] 김도훈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 '운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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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산을 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북한산 비봉이다.
산타기를 좋아하게 된 지 이제 3년 정도 되었을까?
주로 휴일과 주말을 이용하여 다니던 산행을 매일 아침 불암산
오르기로 강화한 지도 만 5개월.
지난 4월말 안개낀 아침 경사진 바위를 내려오다가 그만 미끄러져
허리뼈를 다쳐 자리에 눕게 되었다.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일도 있군"
소식을 듣고 문병을 온 직장 동료들의 첫 반응이었다.
그 동안 나 자신도 모르게 산행의 즐거움을 지나치게 떠벌렸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절대로 무리하게 빨리 몸을 움직여서는 안돼"
주위 가족들은 걱정에서 그리고 허리를 아파 본 분들은 본인들의
경험에서 이렇게 주의를 주곤 했다.
정형외과 의사도 "뼈가 완전히 굳어지려면 3개월은 걸려요" 했기 때문에
앞으로 산행을 재개할 수 있을지 그것도 언제나 가능할지 하고 노심초사
했었다.
이러한 걱정을 일거에 날려 버린 것이 재활의학과 의사의 적당한
운동의 권고였다.
산을 타는 마슬 잊지 못했다고 할까?
경사진 바위를 슬랩으로 오르내리는 스릴과 그 뒤에 오는 성취감.
그리고 나이에 어룰리지 않게 꼴사납게 나와 있다가 이제 쑥 들어가
버린 배 (약 5개월만에 7kg 이상의 감량)를 샤워 후 거울에 비추어 보는
즐거움.
이 모든 것들이 산을 다시 타게 만들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산행재개의 의지를 굳게 한 것을 운악회 (KIET
산악회) 회원들의 배려였다.
다시 출근해서도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내 모습을 보면서 원래
계획되어 있던 6월 초의 설악산 공룡능선 산행을 9월 이후로 미루기로
결정해준 것이 너무도 고마웠기 때문이다.
"누구가 회장이 된 이후로는 운악회가 산행에 나서기만 하면 비가 와"
전임 회장께서 부원장이 되면서 내놓은 회장자리를 내가 맡은 후로 매번
그렇다고 하면서 모든 것이 회장 탓이라고 더퍼씌우던 회원들.
그 외원들이 회장을 모시고(?) 가야 한다고 기껏 잡아놓은 일정을
연기한 것이다.
회장이 되고 처음 산행을 간 곳이 소백산.철쭉제를 본답시고 기껏
갔는데 산행날 아침부터 출기차게 장대비가 내렸다.
모두들 우산 쓰고 우비 입고 오르기 시작했다.
철쭉제 기간인데도 인적은 드물었고 가끔 내려오는 팀들이 흠뻑
젖어있는 모습을 보고는 실망도 컸다.
그러나 고생 끝에 능선에 올랐을 땐 거짓말같이 비가 그쳤고 능선에서
목격한 자연의 장관은!!
하늘에는 아직도 드리우고 있던 구름이 만들어내는 운무, 그리고 땅에는
비에 젖은 철쭉의 깨끗한 아름다움.
우리는 우리만이 독점한 자연의 조화 속에 어우러져 어린애들처럼
뒹굴었다.
뒤이어 간 곳이 치가 떨리고 악이 받친다는 치악산.
종주를 계획했기에 13시간을 구름 속에서 헤매었다.
정상 부근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하늘이 조금씩 개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세 번째로 간 설악산 산행 때, 대청봉과 소청을 지나면서도 예의
구름과 비 때문에 용아장 능선의 아름다움을 놓친 것은 아직도 못내
아쉽다.
금년 초에는 밤 늦게 (10시에서 12시까지) 용대리에서 백담산장가지의
약 8km의 눈길을 달빛 속에 행군 하듯이 올라가기도 했다.
이번 가을로 옮긴 공룡능선 정복 때는 아깝게 놓쳤던 설악산 경치의
진수를 우리 운악회가 만끽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것은 일단 회장이 다쳐서 액땜을 했고 회운들도 고운(?) 마음씨를
썼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26일자).
이번에는 북한산 비봉이다.
산타기를 좋아하게 된 지 이제 3년 정도 되었을까?
주로 휴일과 주말을 이용하여 다니던 산행을 매일 아침 불암산
오르기로 강화한 지도 만 5개월.
지난 4월말 안개낀 아침 경사진 바위를 내려오다가 그만 미끄러져
허리뼈를 다쳐 자리에 눕게 되었다.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일도 있군"
소식을 듣고 문병을 온 직장 동료들의 첫 반응이었다.
그 동안 나 자신도 모르게 산행의 즐거움을 지나치게 떠벌렸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절대로 무리하게 빨리 몸을 움직여서는 안돼"
주위 가족들은 걱정에서 그리고 허리를 아파 본 분들은 본인들의
경험에서 이렇게 주의를 주곤 했다.
정형외과 의사도 "뼈가 완전히 굳어지려면 3개월은 걸려요" 했기 때문에
앞으로 산행을 재개할 수 있을지 그것도 언제나 가능할지 하고 노심초사
했었다.
이러한 걱정을 일거에 날려 버린 것이 재활의학과 의사의 적당한
운동의 권고였다.
산을 타는 마슬 잊지 못했다고 할까?
경사진 바위를 슬랩으로 오르내리는 스릴과 그 뒤에 오는 성취감.
그리고 나이에 어룰리지 않게 꼴사납게 나와 있다가 이제 쑥 들어가
버린 배 (약 5개월만에 7kg 이상의 감량)를 샤워 후 거울에 비추어 보는
즐거움.
이 모든 것들이 산을 다시 타게 만들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산행재개의 의지를 굳게 한 것을 운악회 (KIET
산악회) 회원들의 배려였다.
다시 출근해서도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내 모습을 보면서 원래
계획되어 있던 6월 초의 설악산 공룡능선 산행을 9월 이후로 미루기로
결정해준 것이 너무도 고마웠기 때문이다.
"누구가 회장이 된 이후로는 운악회가 산행에 나서기만 하면 비가 와"
전임 회장께서 부원장이 되면서 내놓은 회장자리를 내가 맡은 후로 매번
그렇다고 하면서 모든 것이 회장 탓이라고 더퍼씌우던 회원들.
그 외원들이 회장을 모시고(?) 가야 한다고 기껏 잡아놓은 일정을
연기한 것이다.
회장이 되고 처음 산행을 간 곳이 소백산.철쭉제를 본답시고 기껏
갔는데 산행날 아침부터 출기차게 장대비가 내렸다.
모두들 우산 쓰고 우비 입고 오르기 시작했다.
철쭉제 기간인데도 인적은 드물었고 가끔 내려오는 팀들이 흠뻑
젖어있는 모습을 보고는 실망도 컸다.
그러나 고생 끝에 능선에 올랐을 땐 거짓말같이 비가 그쳤고 능선에서
목격한 자연의 장관은!!
하늘에는 아직도 드리우고 있던 구름이 만들어내는 운무, 그리고 땅에는
비에 젖은 철쭉의 깨끗한 아름다움.
우리는 우리만이 독점한 자연의 조화 속에 어우러져 어린애들처럼
뒹굴었다.
뒤이어 간 곳이 치가 떨리고 악이 받친다는 치악산.
종주를 계획했기에 13시간을 구름 속에서 헤매었다.
정상 부근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하늘이 조금씩 개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세 번째로 간 설악산 산행 때, 대청봉과 소청을 지나면서도 예의
구름과 비 때문에 용아장 능선의 아름다움을 놓친 것은 아직도 못내
아쉽다.
금년 초에는 밤 늦게 (10시에서 12시까지) 용대리에서 백담산장가지의
약 8km의 눈길을 달빛 속에 행군 하듯이 올라가기도 했다.
이번 가을로 옮긴 공룡능선 정복 때는 아깝게 놓쳤던 설악산 경치의
진수를 우리 운악회가 만끽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것은 일단 회장이 다쳐서 액땜을 했고 회운들도 고운(?) 마음씨를
썼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