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예술가들이 정치적 윤리적 소재의 제약에서 벗어나 어느정도
"예술표현의 자유"를 누리기 시작한 것은 길게 잡아야 10년이 채 못된다.

소재의 제약에서는 일단 벗어났다 해도 연극의 사전심의제도가 폐지된 것이
지난 94년, 음반과 비디오의 사전심의가 폐지된 것이 경우 지단달초였고
영화는 아직 사전심의를 받고 있는 실정이니, "표현의 자유"면에서는 아직
초등학교수준에 머물어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폭력혁명을 선동하거나 사회주의를 찬양하는 내용의 음반물의 경우
사안별로 국가보안법을, 음란한 내용의 경우에는 형법상 음란죄를 엄격히
적용할 방침이다"

음잔물사전심의폐지가 발표된 직후 검찰이 이런 내용의 경고성방침을 밝힌
것을 보면 진정한 의미의 "표현의 자유"가 실현될 날이 아직 멀었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 자유의 폭이 점차 넓어져가도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수
없다.

예술표현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과거보다는 놀랄만큼 많이 풀렸는데도
예술계에서는 이상한 현상이 눈에 띈다.

한때 유행하던 정치적 소재들의 예술작품이 지금은 씻은듯 사라지고 선정적
작품들만 판을 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경향은 연극계에 두드러져 30여개가 넘는 소극장이 밀집해 있는 서울
동숭동 대학로에는 포르노를 연상케하는 포스터들이 줄줄이 나붙어 있다.

연극이라기 보다는 쇼라고 해야 할 저질 코미디나 벗는 연극에만 관객이
몰린다.

특히 영화 비디오등 영상매체의 노출과다현상은 "상업주의적 선정화"라고나
해야할지 모르겠다.

이런 현상은 아무리 세계화와 연결지어 설명해 보려해도 풀리지 않는
숙제다.

최근 서울의 한 호텔에서 한국누드모델협회가 창립행사의 하나로 "누드쇼"
를 벌여 화제가 되고 있다.

누드모델이란 직업에 대한 사회의 낮은 인식을 개선하로 누드의 예술성을
홍보하기 위한 행사였다는 주최측의 설명이 과연 온당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아무리 아름다운 음악과 조명으로 꾸며져 예술적 속성을 지닌 스트립쇼라고
해도 그것이 결코 예술이 될수 없는 것은 그 목표가 관객을 성적황홀경으로
이끌어 가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포르노그라피는 한 사회속에 깊숙하게 확립된 가치관이 무너지고 사회가
두죽박죽일때 번창하는 일종의 마약같은 것이라고 한다.

어떻게 보면 사회에 대한 데모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철없는 실험
정신의 발로 같이 보이는 "누드쇼"도 한국사회의 이런 병리현상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