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신사의 경영상태가 악화된 것은 정부의 낙하산 인사 때문이다.

업무를 잘 모르는 사장이 내려와 정부가 시키는대로 하니 경영이 제대로
될리가 없다"(국민투신 이성열 노조부위원장)

투신사의 경영상태를 악화시킨 가장 큰 요인이 낙하산인사라는 얘기다.

실제로 서울소재 3개투신사의 역대사장들은 대부분 정부관료 출신이었다.

지난해에는 3투신의 사장들이 모두 국세심판소장 관세청차장 등 세무관료
출신이었다.

"투신사사장이 되려면 세무관료가 되라"는 얘기까지 나돌았다.

그러나 노조의 거부도 만만치 않다.

회사의 앞길을 걱정하는 만큼 노조원들 부실경영의 원인이 되온 낙하산
인사를 받아들일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올해초 보장각서파문으로 국민투신 김봉헌사장이 물러났다.

이때부터 국민투신노조는 낙하산인사를 결사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정부관료가 또 사장으로 내려와 회사를 더욱 망쳐놓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사라면 사고 팔라면 파니 투신사의 경영이 제대로 될리가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할수 없이 증권업계의 경험을 갖춘 이정우사장을 내정했다.

국민투신노조도 대안이 없다며 수긍했다.

최소한 관료출신의 사장이라는 낙하산은 거부시킨 셈이다.

투신사노조가 낙하산인사를 거부하는 것은 또다른 이유가 있다.

내부승진이라는 노조원들의 승진통로가 막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외부영입이 필요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내부에서 인력을 양성하지 못한
경영자의 책임도 있다는게 노조측의 지적이다.

"한국투자신탁의 창립멤버가운데 아직 임원이 된 사람은 한명도 없다.

내부승진이라는 직원들의 희망을 이루기위해 전력을 다하겠다"(한국투신
강태영 감사실장)

지난 74년 설립된 한국투신의 설립초기멤버인 강실장은 한국투신의
산증인이다.

사장은 물론 임원들까지 "저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실상을 20여년동안이나
경험한 그다.

부장까지 마치고 물러설수 없는게 그의 위치다.

부장까지 마치면 퇴직하고 만다는 선례를 후배직원들에게 남길수 없기
때문이다.

최소한 정규임원인 상무까지 승진되고 나서 물러서겠다는게 강실장의
의지다.

대한투신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사장이 낙하산인사로 내려올 때마다 노조의 항의집회가 있었지만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되버렸다.

임원들도 외부에서 영입되오거나 영입된후 승진된 케이스가 대부분이다.

국민투신의 경우는 그래도 좀 나은편이다.

한국투신이나 대한투신에 비해 뒤늦게 설립된데다 수탁고규모도 절반수준
이지만 노조원들에게는 낙하산인사를 거부해냈다는 자신감이 엿보인다.

올해초부터는 전직원이 노조에 가입해야 하는 유니온샵제도까지 도입키로
경영진과 합의를 봤다.

지난달 10일 정기주총때 퇴임한 부사장 상무등도 창립멤버였다.

한국투신이나 대한투신보다는 늦게 출발했지만 창립멤버가 부사장까지는
승진했던 것이다.

투신사의 낙하산인사는 따지고 보면 감독관청의 강력한 규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과거 재무부나 현재의 재경원이 투신사들의 경영에 간섭해온 탓이다.

처음엔 낙하산사장을 반대했던 노조가 나중에는 사장퇴임을 반대하는
사례가 이를 반증한다.

투신사 입장에서도 재무부나 재경원출신관리가 있는게 유리한 측면이
된다는 얘기다.

어쨌든 투자신탁업도 이제는 본격적인 경쟁기대에 들어선만큼 낙하산
인사는 이제 구시대적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는게 투신사 노조측의 지적이다.

신설투신사의 경우 외부의 낙하산인사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추세라면 투신업계의 낙하산 인사는 멀지않아 사라지게 될 것같다.

<최명수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