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4일.

대한투자신탁에 긴급임원회의가 열렸다.

안건은 차입금 축소방안 마련.

주가가 하락하면서 은행으로부터 빌린 돈이 경쟁사보다 더욱 크게 늘어난
것이다.

종합기획부를 중심으로 차입금대책을 강구해 봤지만 뾰족한 묘안이
없었다.

회계처리를 이리저리 굴려보는것도 허사.

결국 2조890억원에 달하는 차입금을 올회계연도안에 4,725억원정도 줄이는
축소목표치만을 정하고 끝났다.

이를 위해 자금이 유입되면 우선적으로 차입금축소재원으로 활용한다는
방침과 단자사및 증권금융으로부터 빌린돈을 먼저 갚는다는 원칙을 세웠을
뿐이었다.

서울 3대투신의 차입금문제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매회계연도마다 영업과 운용으로 벌어들인 수익을 차입금이자로 까먹는다.

그러니 자기자본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자본잠식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차입금이자는 이자에 이자까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이다.

"지난 95회계연도에 2,102억원의 영업이익을 2조원이 넘는 차입금이자로
2,013억원을 까먹고 나니 임대료수입등을 합해도 당기순이익이 136억원에
불과하다"(한국투신 이원희상무)

한국투신은 그래도 이익을 낸 편이다.

대한투신은 위탁자보수 등으로 벌어들인 영업수익에서 영업비용을 뺀
영업이익이 1,729억원이었지만 1,748억원을 지급이자로 쓰고나니
당기순이익은 48억원뿐이었다.

차입금이 2조4,683억원에 달한 탓이다.

국민투신은 사정이 더욱 심각하다.

95회계연도에 1,179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낸 것이다.

지난해말 보장각서파문으로 고객에게 배상한 돈인 보전보족금만도 무려
422억원에 달했다.

수탁고가 10조원수준인데도 차입금규모는 한국투신이나 대한투신에 맞먹는
1조9,739억원이다.

그러니 자본잠식규모는 3,226억원으로 늘어났다.

투신사들이 이처럼 차입금에 시달리게 된 것은 지난 89년 이른바 "12.12"
특융때문이다.

89년 4월이후 주가가 크게 하락하자 증시부양책의 일환으로 정부가
투신사에 각종 자금을 지원해 주식을 사게 만든 것이다.

12.12는 투신사가 눈덩이같은 차입금을 짊어지게 한 "원죄"에 해당된다.

돈을 빌려 산 주식의 가격이 계속 하락하니 속수무책으로 빚더미에 앉을수
밖에 없는게 투신사의 신세다.

빚을 빚으로 갚은 악순환이 계속됐고 급기야 증권금융으로부터 공모주청약
예금까지 저리로 융자를 받아야할 형편이었다.

그결과 지난 89년 3월말 1,011억원에 불과하던 서울소재3 투신의 차입금은
지난 6월말현재 모두 7조여억원으로 늘었다.

"증권금융으로부터 빌린돈은 그래도 이자가 싸다.

물론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이라고도 볼수 있다.

어쨋든 엄청난 차입금으로 대부분 투신사들이 배당도 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대한투신 C실장)

투신사가 차입금이 많은 이유는 주가하락에서 비롯된 것이다.

주가가 하락하니 수탁고가 줄수밖에 없다.

고객의 환매요구를 들어주고도 주식을 팔지 못하니 미매각물량이 쌓일수
밖에 없다.

미매각물량이 쌓이면 환매에 드는 돈을 고유계정의 차입금으로 쓰이게돼
차입금은 또 늘어난다.

주가가 하락하면 차입금이 늘어나니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

"기존투신사의 재무구조가 취약한 것을 감안해 신설투신사에 대한 각종
업무규제를 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기존투신사의 수탁고가 25조원에 달하면 매년 2,500억원의 이익을
낼수 있기 때문에 정부차원에서의 보호조치는 필요없을 것으로 본다"
(재정경제원 Y서기관)

지난 1일부터 신설투신사와 기존투신사와의 경쟁은 시작됐다.

신설투신은 펀드운용과 영업상 각종규제에 묶이며 출발한다.

차입금부담이 많은 기존투신의 재무구조가 취약하다고 정부가 마냥 돌보고
있을건지 곰곰히 생각해볼 문제다.

< 최명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