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히기 시작하면 속수무책 기다려야 하는 서울의 도로사정.

무너진 성수대교 부근에서 발이 묶인채 무심히 흐르는 한강을 바라본다.

한번 들어서면 좀처럼 빠져나올 수 없는 욕망의 회로처럼 잘못 선택한
노정의 실수로 반나절을 소모해야 하는 이 낭패감.

순간적 판단오류로 감수해야 하는 일이 비단 이 일뿐이겠는가.

조급한 마음을 달래보느라 문득 봉은사로 가기위해 서성이던 뚝섬 나루터가
어디쯤이었을까 생각해보지만 스무해도 더 지난 오늘날 선상카페의 흔들리는
불빛안 낯설뿐 목선이 드나들던 갯비린내 나던 한강포구는 흘러가버린
꿈인양 아련하다.

이미 떠나버린 나룻배를 향해 헛손질해대던 그때, 무명수건으로 땀을 씻던
구리빛 얼굴의 소박한 사공만큼이나 사는 일은 어수룩하고 낭만적이기도
하였다.

국민소득 1만달러, 세상의 모든 정보는 인터넷으로 열려있고 첨예화된
국제감각의 의식구조와 풍요한 생활패턴은 우리의 사는 모양새를 화려하게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과연 행복한 것일까.

억새풀 우거진 얕으막한 능선따라 봉은사 찾아가던 그길은 근대화의
물결속에 오래전 우리의 기억이나 일상밖으로 살아져버린 것들중 하나지만
저 부끄러운 시대의 상징적존재, 허리잘린 다리를 보노라면 품삯을 흥정하며
나룻배로 건너가던 한강의 옛풍경이 차라리 그립기조차하다.

지금까지 우리는 무엇을 얻기위해 이처럼 시간과 변화의 무서운 속도감에
공포를 느끼면서도 고삐를 늦추지 못하고 달려왔던 것일까.

급성장한만큼 엄청난 재앙으로 그 댓가를 치루어야 했던 우리현실로 볼때
그것은 질적인 과정보다 양적인 결과에 치중한 정신의 흐름탓이다.

영구적이지 못한 부실한 도시계획이나 국토개발은 결코 금형의 미나
기초문학의 견고성을 무시할수밖에 없는 구조적 원인을 안고 있다.

도도하고 아름다웠던 우리의 서울.

이제부터라도 과거와 현재의 시공을 연결하는 역사와 정신문화에 대한
가치정립으로 우리의 고유한 정서와 문화적 척도를 가늠할수 있는
도시환경을 계획하고 가꾸어야 하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