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명(브랜드)이 길어지고 있다.

아름다운 우리 고유의 언어로 상표명을 짓는게 유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름도 길어지고 있다.

독특하고 긴 우리말 이름이 소비자에게 친근감을 주는 것은 물론 영어나
한자식 이름으로는 표현하기 힘들었던 제품의 특징을 알기 쉽게 전달해 주기
때문이다.

"아이큐랑 블록블럭" "아이셔 백만볼트껌" "카라멜콘과 땅콩" 등 어린이용
과자와 장남감에서 시작된 독특한 상품명은 전자제품 컴퓨터 등 성인 대상의
제품으로까지 확산되는 추세다.

최근 앞다투어 아름다운 우리말 상표를 등장시키고 있는 곳은 프리미엄소주
경쟁을 벌이고 있는 소주업체들이다.

보해양조가 조선말기의 방랑시인 김병연의 별명을 딴 "김삿갓"을 내놓자
두산경월이 "청산리벽계수", 진로가 "참나무통 맑은 소주"로 응수했다.

진로 김상수차장은 "위스키소주 등 여러가지 후보안이 있었으나 참나무통
에서 1년 이상 숙성시킨 증류원액을 사용한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참나무통 맑은 소주"라는 이름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식품들의 이름도 눈에 띄게 길어졌다.

해태음료가 작년 8월 "갈아만든 홍사과"를 내놓자 "사각사각 사과"
"갈아만든 빨간 능금" "알알이 담긴 사과" "동네방네 미숫가루" "몸에 좋은
제주당근" 등 독특한 상품명이 쏟아져 나왔다.

해태음료 총무과 윤여운과장은 "제조방법은 상품명으로 등록하지 못한다는
위험이 있으나 단기간에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방법으로 독특한
작명이 계속 시도되고 있다"고 말했다.

가전제품 중에선 세탁기 청소기 등 생활소품들에서 우리말 이름이 많이
눈에 띈다.

"카오스세탁기 세 개 더" "조용한 청소기 잠잠" "큐씨네 칼라프린터"
등이 그것이다.

긴 이름이 유행하는 것은 이웃나라 일본도 마찬가지다.

모리나가의 "세라문 슈퍼스의 과자를 모은 봉투", 전원주택업체인 부르봉의
"모두 모여 만든 삼림속의 통나무집", 산토리의 "빙점에서 저장한 생맥주"
등 제품의 속성을 나타내는 이름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금까지의 브랜드 작명원칙은 두세음절 정도로 기억하기 쉽고 부르기
쉬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긴 상표명이 한 호흡에 부르기 힘들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우선 소비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브랜드는 상품의 첫 인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독특해야, 개성이 있어야, 남들과 달라야 소비자들의 관심을 쉽게 끌고
기억에도 오래 남길 수 있는 것이다.

영어나 한자식 이름과는 달리 상표명 속에서 제품의 특징을 알기 쉽게
요약하고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광고 카피중의 한구절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이름속에서 제품이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 눈치챌 수 있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종류의 상품이 쏟아져 나오는 다품종 소량생산시대에
기존의 두세음절 상품명으로는 더 이상 등록할 이름이 없다는 것도 이러한
추세를 부추기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티뷰론"처럼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등 아랍어 인도네시아어
등 비영어권 이름이 늘어나거나 영어를 쓰더라도 두단어 이상을 조합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이러한 예다.

브랜드네이밍회사인 인워드의 노장오사장은 최근 작명 경향을 <>상호를
이용하기 보다는 제품 자체로 승부를 거는 개별브랜드전략 <>첨단 기술과
전문성보다는 제품이 소비자에게 줄 수 있는 이점의 강조 등 두가지로 요약
했다.

우리 고유의 토속적이고 색다른 이름이 선호되는 것은 소비경향이
다양해지는 현대 소비사회의 또다른 단면인 셈이다.

< 이영훈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