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의 맹추격에다 막판엔 병마의 위협에 숨을 옥죄던 옐친이 3일의
대선 결선투표에서 55%에 가까운 득표로 승리함으로써 냉전시대로의 회귀
가능성은 봉쇄됐다.

75년 최장집권한 몽골 공산당의 총선 패배에 이은 구종주국 러시아
공산당의 재도전 실패는 러시아 인민의 선택일뿐 아니라 어쩌면 20세기
최후에 그어진 세계사적 분수령이랄수 있는 사건이다.

국민의 개혁 부작용에 대한 불만과 초대강국 노스탤지어에 영합한 주가노프
공산당수의 이유있고 패기찬 도전은 확실히 옐친에게 버거웠다.

2차투표의 압승은 1차투표 3위 특표자 레베드 장군의 합류가 가까운
승인이지만 못지 않게 총동원된 미국등 서방국들의 지원, 개혁편에 선
국내외 매스컴의 합세 결과로 평가를 종합할수 있다.

그러나 그 어느것 보다 옐친에게 승리를 안겨준 큰 힘은 비록 빈부차확대와
부패만연, 굴욕적 서방의존이 자존심을 상해도 자유를 다시 내줄순 없다는
유권자의 선택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는 자유선거 경험이 일천한 속에 분명 관의 엄정중립 여부엔 문제가
제기될수 있을지 몰라도 최소 11시간 시차의 광대 국토에 걸친 두차례
투개표과정에 이렇다 할 의혹이 없었다는 사실 하나로 뒷받침된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부터다.

개혁 추진상의 차질, 체첸문제 등 과거 옐친이 쌓은 결함에다 이번 힘겨운
승리를 이끄는 과정서 부상된 새로운 과제들 까지 어림할 때 러시아의
앞날은 험난, 그것이다.

특히 새 과제중엔 이미 레베드 포용이후 단기간에 불거져온 체제내
권력암투 징후로서, 건강악화에 의한 후계와 맞물려 언제 터질지 모를
점화된 도화선과 같다.

그렇잖아도 국유기업 민영화, 통화안정과 시장경제 능률제고, 분배정의
추구와 부패추방, 치안확보, 체첸독립 공약실현 등 산적한 내적 과제의
해결은 분명 러시아 장래의 최대 결정인자였다.

그러나 이번 선거를 통해 주가노프 아래 공산당이 전열을 정비한 마당에
자신의 건강과 진영마저 불안한 처지라면 민영화 촉진 등 개혁 일변도적
추구는 기대하기 힘든 현실이 온 셈이다.

다행히 대외적으론 오히려 하기에 따라 플러스 요인이 있다.

전제조건이 따른다.

선거에서 서방이 아끼지 않은 대옐친 지원이 필시 개인에 대한 호오를
떠나 러시아, 나아가 보다 나은 세계를 지향한 것이었다면 향후로도
러시아의 진정한 개혁을 도와야 하고 최소 방해를 해선 안된다는 점이다.

그런 외부여건 가운데엔 NATO (북대서양동맹)를 구동구권 전체로 확대
하려는 서방의 시도가 으뜸이다.

이는 러시아 민족주의의 고취요, 소비에트 시대에 대한 경계효과가 아니라
그 향수의 자극이며 공산화의 고무다.

여기도 물론 호혜성 원리는 작용한다.

공산주의는 분명 자멸중에 있다.

단 자본주의의 끊임없는 자기개선이 필요조건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격언이 정통 그리스 정교의 러시아인
에게 더이상 의미있는 시대는 다시 찾아오지 않을지 모른다.

사면초가속에 모스크바를 주시했을 평양도 이제 하루빨리 현실에 눈을 떠
남북대화에 나섰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