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친에 절대 충성 .. 러시아 총리 체르노미르딘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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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선에 성공한 옐친 대통령으로부터 총리로 재지명된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58) 러시아 총리는 옐친을 향한 꿋꿋한 충성심으로 옐친 제2기의 정부를
이끌어 가게 됐으며 동시에 오는 2000년 옐친 이후의 차기 대권주자로 부상
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92년 옐친과 의회내 보수파들간의 타협 후 총리에 임명된 이래
특히 인플레 억제와 루블화 가치 안정,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지 등을
바탕으로 "경제안정정책"에 역점을 둬왔다.
그러나 선거운동 기간중에는 옐친의 재선을 위해 예산 적자에도 불구하고
정부지원금을 늘리고 체불 임금을 지급하는 유화책을 펴기도 했다.
체르노미르딘 총리는 지난 해 6월 체첸 반군들에 의한 부됴노프스크 인질
사건때 반군들과의 협상을 성공시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 해 10월 옐친이 두 차례에 걸친 심장질환으로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을 때자신이 대통령 권한중 일부를 장악하고 있다고 밝혀 국제사회의
우려를 불식시켰으나 올해 초 옐친의 인기가 곤두박질칠 때는 지지자들의
요구를 일축하고 그에 대한 충성심을 굳게 지켰다.
옐친은 그에 대해 "나는 체르노미르딘이 무릎까지 오는 장화를 신고 건설
현장이나 광산 등을 방문하는 것을 보아 왔다. 이는 정말 힘든 일"이라고
찬양했다.
체르노미르딘 총리는 1938년 우랄산맥 남부의 오렌부르크에서 트렉터
기사의 아들로 태어나 노동자 생활을 거친 뒤 61년 공산당에 입당했다.
82년 브레즈네프 정권에서 가스산업담당 차관, 고르바초프 정권에서 장관을
지냈고 89년 거대 국영 가스회사인 가즈프롬의 사장에 임명됐다.
92년 5월 옐친에 의해 연료에너지부 장관에 임명됐다가 그해 12월 총리에
올랐다.
체르노미르딘은 특히 지난달 16일 대선 1차투표 이후 라이벌 올레그
소스코베츠 제1부총리를 제거함으로써 기반을 강화했으며 이제는 지난 1차
투표후 옐친 진영에 합류한 알렉산드르 레베드 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이
그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꼽힌다.
그는 4일 옐친의 승리가 확정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두고 보자"며 여운을 남겼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6일자).
(58) 러시아 총리는 옐친을 향한 꿋꿋한 충성심으로 옐친 제2기의 정부를
이끌어 가게 됐으며 동시에 오는 2000년 옐친 이후의 차기 대권주자로 부상
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92년 옐친과 의회내 보수파들간의 타협 후 총리에 임명된 이래
특히 인플레 억제와 루블화 가치 안정,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지 등을
바탕으로 "경제안정정책"에 역점을 둬왔다.
그러나 선거운동 기간중에는 옐친의 재선을 위해 예산 적자에도 불구하고
정부지원금을 늘리고 체불 임금을 지급하는 유화책을 펴기도 했다.
체르노미르딘 총리는 지난 해 6월 체첸 반군들에 의한 부됴노프스크 인질
사건때 반군들과의 협상을 성공시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 해 10월 옐친이 두 차례에 걸친 심장질환으로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을 때자신이 대통령 권한중 일부를 장악하고 있다고 밝혀 국제사회의
우려를 불식시켰으나 올해 초 옐친의 인기가 곤두박질칠 때는 지지자들의
요구를 일축하고 그에 대한 충성심을 굳게 지켰다.
옐친은 그에 대해 "나는 체르노미르딘이 무릎까지 오는 장화를 신고 건설
현장이나 광산 등을 방문하는 것을 보아 왔다. 이는 정말 힘든 일"이라고
찬양했다.
체르노미르딘 총리는 1938년 우랄산맥 남부의 오렌부르크에서 트렉터
기사의 아들로 태어나 노동자 생활을 거친 뒤 61년 공산당에 입당했다.
82년 브레즈네프 정권에서 가스산업담당 차관, 고르바초프 정권에서 장관을
지냈고 89년 거대 국영 가스회사인 가즈프롬의 사장에 임명됐다.
92년 5월 옐친에 의해 연료에너지부 장관에 임명됐다가 그해 12월 총리에
올랐다.
체르노미르딘은 특히 지난달 16일 대선 1차투표 이후 라이벌 올레그
소스코베츠 제1부총리를 제거함으로써 기반을 강화했으며 이제는 지난 1차
투표후 옐친 진영에 합류한 알렉산드르 레베드 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이
그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꼽힌다.
그는 4일 옐친의 승리가 확정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두고 보자"며 여운을 남겼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