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카는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달리는 즐거움만 만족시키면 된다.

그럴 수만 있다면 자동차로서의 다른 기능은 포기해도 좋다는 것이
스포츠카이다.

기아자동차가 16일부터 판매에 들어갈 "엘란"도 이런 스포츠카의 컨셉트를
충실히 지킨 차다.

2인승 정통스포츠카에 컨버터블(오픈 카), 최고시속 220km, 총탄을
연상시키는 날렵한 외관-모두 "달리기"라는 한가지 목적만을 지향하고
있다.

엘란은 1,000억원이상을 투자해 개발한 기아의 야심작이다.

영국 로터스사의 엘란을 기본틀로 삼고 엔진 트랜스미션은 기아 것을
썼다.

한가한 시간대 자유로를 시승지로 택했다.

엘란은 첫 출발부터 짜릿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1단기어를 넣고 순식간에 시속 65km에 올라선 엘란의 속도계는 3단에서
벌써 시속 125km를 가리킨다.

1단기어에서의 가속력은 압권이라고 할 수 있다.

시속 100km의 도달시간은 7.8초.

스포츠카로서 손색이 없는 수치다.

엘란에 가속력을 뒷받침하고 있는 심장은 기아가 독자개발한 TSD엔진.

크레도스에 장착되는 1.8 DOHC엔진을 개량해 동력성능을 높였다.

트랜스미션도 국산화한 것으로 기어비를 변형시킨 수동 5단이다.

물론 엘란의 최대 장점은 단단한 "아랫도리"다.

특히 물고기 등뼈를 닮은 I형 백본(Back Bone)프레임은 로터스 시절부터
"세계 최고"라는 명성을 놓친 적이 없는 엘란의 트레이드 마크다.

정확한 무게중심에 비틀림에 대한 버팀력이 월등할 뿐만 아니라 4각
링크형 서브 프레임을 보강해 안전도 또한 뛰어나다.

몸체(보디)를 플라스틱으로 만든 이유는 I형 백본 프레임이 워낙 몸무게가
무겁기 때문이다.

세계 어느 업체든지 이 프레임을 사용하고 싶지만 원가부담과 중량조절이
어려워 손을 대지 못한다는 걸 보면 엘란의 하체를 대충 감잡을 수 있겠다.

그만큼 엘란의 코너링은 뛰어나다.

최저시속 100km를 넘는 시승의 커브길에서도 착착 밑으로 붙어드는
접지력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ABS를 장착하지는 않지만 엘란의 브레이크 성능상 ABS의 필요성은
느껴지지 않는다.

시속 100km에서 급제동을 해도 결코 차체가 옆으로 밀려나지 않는다.

어느 차나 마찬가지지만 엘란에도 아쉬운 점은 남아 있다.

핸들이 필요이상으로 크고 기어 손잡이도 제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다.

인스트루먼트 패널의 디자인도 기왕이면 스포츠카에 걸맞게 디자인됐으면
좋았을 것 같다.

김선홍 기아그룹회장은 최근 몇몇 임원들에게 "스포츠카 느끼는 법"을
강의했다.

"타이어가 작은 돌을 넘어가는 미세한 느낌, 우렁찬 엔진의 소리,
엔진에서 배어나오는 휘발유냄새, 쏜살같이 흘러가는 주변의 풍경"

5감을 만족시키는 스포츠카를 모는 재미다.

< 이성구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