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말 한때 "총체적 위기"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노사관계가 극도로 악화되고 수출경쟁력은 바닥에 떨어지고 부동산투기가
기승을 부리던 당시 경제 사회상황에서 비롯된 유행어였다.

수출업계에선 요즘 이 유행어가 망령처럼 되살아나고 있다.

"한국의 수출산업이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지적하는 문제점은 단순히 수출부진만이
아니다.

수출이 안되는 건 둘째치고 도대체 수출을 해도 채산성이 안맞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채산성을 결정하는 변수들은 하나같이 안좋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인건비의 경우 작년에는 평균임금상승율이 10%였으나 올들어서는 13%대를
기록하고 있다.

수출단가도 지난해에 비해 평균 5% 가량 떨어졌다.

그중에도 수출주력 품목인 반도체와 철강가격은 폭락세를 보이고 있다.

기업들의 자금조달비용 부담도 커지고 있다.

제품이 안팔리니 금융기관에서 빌려써야 하는 돈의 규모가 커진 때문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증권시장도 맥을 못추고 있어 직접조달도 어려운
형편이다.

수출업계의 기상도가 이렇게 먹구름으로 잔뜩 덮여 있으니 "총체적 위기"
라는 표현도 과장만은 아닌성 싶다.

문제는 정부나 업계가 이같은 위기가 올때까지 그동안 과연 무슨 대비를
해왔는가 하는 점이다.

지난해 한국의 수출은 대망의 1천억달러고지를 돌파했다해서 나라전체가
축제분위기였다.

86~88년에도 한국은 사상처음 무역흑자를 누렸다.

그 잠깐의 무역흑자가 다시 적자로 돌아섰을때 식자들은 "흑자기간중에
기술경쟁력을 키웠어야 했는데 시기를 놓쳤다"고 개탄했다.

그리 멀지도 않은 5~6년전의 교훈을 우리는 그새 잊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임혁 < 산업1부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