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대나 그 시대 그 사회나름의 풍속이 있다.

다만 어떤 경우에는 인간의 아름답고 착한 본성이 잘 드러나는 건전한
풍속을 이루고, 어떤 경우에는 인간의 교활하고 악한 욕망이 지배하는
퇴폐적 풍속을 이루게 된다.

공자는 어떤 사회가 이처럼 건전하거나 퇴폐적이 되는 원인을 그
사회지도자의 대중을 교화하는 능력 유무에서 찾는다.

그가 유교의 이상적 지도자상인 군자의 덕을 바람 ,대중을 풀에
비유하면서 풀은 바람이 어지러운가 순조로운가에 따라 안정되거나
어지럽게 움직인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의 의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결국 군자는 대중의 풍속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는 논리다.

유교를 국교로 삼았던 조선왕조의 왕들은 모두 공자의 가르침에
따라 백성을 교화하는 군자임을 자임했지만 정말 몇사람이나 유교의
이상인 질서와 균형과 조화속에 백성을 통치했는지는 의문이다.

왕도정치 실현을 위해 문풍을 진작시키는데 진력해 세종에 이어
성군으로 불렸던 성종조에도 퇴폐적 풍조가 만연했던 때가 적지않았다.

성종은 인륜과 도덕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범법자들이 나올때마다
"내가 성주인가"를 스스로 물으며 국가의 기본법인 "경국대전"에
따라 판결하고 근신해야 했다.

성종을 가장 괴롭혔던 일은 세조의 혈손인 창원군이 그의 집 여종인
고읍지를 살해했다는 것이 밝혀진 때였다.

"벌은 가까운 사람에게 먼저 주라"는 교훈에 따라 그는 창원군을
충청도 진천으로 유배하는 결단을 내렸으나 할머니인 정희대비의
간청에 못이겨 철회했다.

당시 창원군을 유배해야한다는 대간들의 극렬한 상소도 부러운 일이지만
범인이 왕자란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몇달동안 샅샅이 수사를 벌여
증인과 증거까지 확보한 당시 수사관들의 정의실현의 열의는 오늘날도
귀감이 될만하다.

또 이런 범죄도 일어났다.

아들과 아비가 짜고 어린 소녀를 납치해다가 아들이 폭행하는 천인공노할
범죄였다.

그런 둘을 다 죽여야한다는 신하들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성종은
폭행한 아들만 처벌한다.

죽이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살리는 것이 법의 정신이라는 "호생지덕"의
철학이 담긴 판결이다.

또 절도죄를 지은 자는 "경국대전"에 장물의 과다에 관계없이 3범이면
교수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도둑이 성행하자 경고용으로 재범이면
죽이자고 신하들이 건의해왔을 때도 성종은 "죄는 같은데 벌이 다른것은
형이 아니다"고 물리쳤다.

성종의 백성을 교화하는 군자다운 진면목은 그가 편애하던 형조판서
현석규를 "소인"이니 파직하라고 몰아붙였던 김언신을 왕을 기망한 죄로
옥에 가둔뒤 괘심죄로 죽이려 했다가 살려주고 술까지 대접한데서 드러난다.

그가 현석규는 소인이라고 죽게 돼서도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자
"내 어찌 임금으로써 간하는 신하를 죽이겠느냐"는 것이 석방이유였다.

법을 세우는 데는 사람들로 하여금 피하기 쉽고 범하기 어렵게
하도록 해야하며 범한 바가 있으면 반드시 "법대로"해야하고 용서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옛 사람들의 법철학이다.

그러면서도 공정하고 가능한한 극형을 피할수 있도록 했다.

"신중히하고 신중히하라. 불쌍히 여겨 형을 행하되 신중히 하라"는
"서경"의 원칙을 철저히 따르고 있다.

성종이 이런식으로 사회의 질서를 잡아간 결과 1473년 11월에는
의금부에 4명, 전옥서에 11명 등 모두 15명의 죄인밖에 없었다는
"성종실록"의 기록은 아주 인상적이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전국 교도소 구치소에 미결수가 급증해 수용능력인
5만3,000명을 1만명이나 초과하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밖에서는 여전히 동물중에 가장 잔인하고 무자비한 인간들의
여중생 폭행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또 한 조사결과에 의하면 고교생가운데 대부분인 91%정도가 법조인을
신뢰하지 않는 등 법 집행기관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차 있다고 한다.

이런 불신이 꼭 고교생들의 생각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전직 두 대통령이 법정출두를 거부했다는 소식도 충격적이다.

옛사람들은 법을 하나 만들면 폐해가 하나 생긴다는 생각에서 좀처럼
법을 경솔하게 바꾸려들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은 제대로 집행도 못하면서 마구 법을 만든다.

"통합선거법"이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다.

지금은 대통령이 판결을 하고 백성들을 교화시켜 나라의 질서를
잡아가는 왕조시대가 아니다.

법의 집행기관들이 질서를 잡아가야 할텐데 그것조차 힘들어진다면
그야말로 치유대책이 없는 "병든사회" "미친사회"가 되고 만다.

"정원의 나무 위에 매미가 이슬을 먹으며 울고 있다. 그 뒤에 이를
잡아먹으려는 사마귀가 침을 삼키고 있고, 그 사마귀뒤에는 다시 참새가
눈동자를 굴리며 사마귀를 쪼아 먹을 생각으로 숨을 죽이고 있으며
나무아래 소년은 활시위를 당겨 참새를 겨냥하고 있다"

모두 눈앞의 이익만 보고 그 뒤의 환난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을 비꼰
"설원"의 이야기가 바로 요즘 우리를 그린 풍속화한폭인 듯 보여
안타깝기만 하다.

< 논설위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