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수일 <서울대 교수/경영학>

지난 6월말부터 약 2주간에 걸쳐 유럽과 일본기업 중에서 초우량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첨단기업들을 관찰할 기회가 있었다.

이번 시찰에서는 이들 우등생 기업들의 본사보다는 생산현장을 중심으로
방문하고 결론을 얻었다.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생산현장에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한가지 구체적으로 프랑스의 대표적 기업인 아에로 스페시알의 경우이다.

이 회사는 아리안 로켓을 제작, 인공위성을 발사해 궤도에 올려놓는
기업이다.

아에로 스페시알의 아리안 로켓을 생산하는 공장은 부지 약 2,000평의
높은 건물로 여기에서 로켓 6개를 동시에 조립하고 있었다.

이처럼 큰 공장의 현장에 근무하는 사람은 불과 60여명 이내로서
각 로켓마다 10명 내외의 근로자들이 부품들을 기중기로 들어올려
조립작업을 하고 있었다.

일단 현장에서 조립이 완료되면 뒤편 유리창 속의 엔지니어들이
테스트를 통해 품질을 관리하고 확인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여기서 흥미있는 점은 현장 인원은 한사람인데 비해 뒤에서 테스트하고
품질을 관리하는 인원은 세사람이나 된다는 것이다.

결국 그넓은 공장에 근로자 몇명이 조립하는 과정을 보면서 "미래의
공장"이라는 개념이 저절로 생각났다.

흔히들 미래형 공장은 무인 공장으로, 작업하는 사람 없이 생산이
이루어진다고 했는데 바로 눈앞에서 미래의 공장에 가까운, 몇 사람만이
일하는 공장이 이미 선진 우량기업에서 실시되고 있음을 목격한 것이다.

또 앞으로 우리나라에 도입될 고속전철인 TGV공장의 경우에도 마찬가지
모습이었다.

TGV고속전철의 핵심인 기관차를 조립하는 공장의 규모는 1,000여평의
건물에 약100명정도의 인원이 몇개의 기관차를 동시에 조립하고 있었다.

독일의 경우 그 유명한 티센 제철은 3년전까지만 해도 3만명이상의
인원을 가지고 있었으나 현재는 1만8,000명으로 반이상의 노동자를
감축하여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큰 공장에 제철생산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음에도 현장에서
작업하는 사람은 별로 볼수 없었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일본의 대형 컴퓨터 생산업체인 후지쓰의 경우 500여평 규모인 1개층에
근무하는 사람은 30명 내외로 생산현장에 도대체 사람이 별로 눈에 띄지않는
것이다.

후지쓰 회사의 특이점은 대형 컴퓨터의 하드웨어 생산에 700명이 있는데
반하여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부문에 2,100명이 근무,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종사자의 비율은 1대3을 이루고 있는것이다.

이와같이 500여평 공장에 30명정도가 근무하며 세계 최첨단의 대형
컴퓨터를 생산하는 모습을 볼때 오늘날 세계 초일류기업들의 생산 체제가
우리기업들의 체제와 어느정도 차이나고 앞서 있는지를 알수가 있다.

현재 우리기업들의 생산체제는 대기업일수록 공장에 수천명이 일하며
공장내에서 원자재 가공부터 시작하여 부품 반제품에 이르기까지 전부
자체생산을 통해 작업하는 체제를 갖고 있다.

이에 반하여 선진국 우량 기업들은 핵심기술이나 역량을 가지고 이를
활용해 대부분 부품이나 반제품을 아웃소싱(out sourcing)을 통해 조달하고
조립과정에서 테스트하여 완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생산 체제의 핵심역량을 개발하는데 주력하고 실제 생산은 아웃소싱을
통하여 해결하는 방안을 채택함으로써 적은 인원을 가지고 높은 생산성이
가능하도록 생산현장을 설계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관찰의 결과는 요사이 우리경제에서 한창 논의되고 있는 고비용
저생산성의 문제와도 직결된다고 하겠다.

구체적으로 앞으로 몇년 남지 않은 21세기에 우리 기업들이 적절히
대응하기 위하여는 다음의 몇가지 변화가 절실히 필요하겠다.

첫째는 생산현장에선 인력수요를 줄이는 생산체제로 전환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오늘날과 같이 큰 공장일수록 수천 수만명의 인원을 가지고 생산하는
방식은 구식체제를 답습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대기업의 큰 공장일수록 생산 소요인원을 감축하는 체제를 도입해
현장에서 사람을 별로 볼 수 없도록 해야겠다.

단지 30여명이 대형 컴퓨터를 조립하고 있다면 그 경우 1인당 부가가치나
생산성이 얼마나 높은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앞으로 우리기업의 생산체제도 외국기업과 경쟁하기 위하여는 이렇게
변하지 않고는 생존이 어려울 것이다.

둘째 우리기업의 생산체제도 과거와 같이 원료에서 완제품까지 전부를
생산하기보다는 아웃소싱 체제를 구축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 경우 주축 기업은 핵심역량을 보유한 기업이 될 것이고, 그 외
기업들은 위성기업으로서 상호협력하여 성장하는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우리기업들이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발진하는 과정에서 생산체제의
변화는 폭넓게 급격히 일어날 것이다.

현재 우리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생산 체제는 끝남이 시작된 체제로서
앞으로 3년이고 5년 후에는 경쟁력 없는 체제로 전락할 것이다.

이제 그 세기를 대비하여 생산체제를 새롭게 설계하고 대비하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