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 파블로 다빌라.

그는 칠레 산티아고 교도소에서 복역하고 있는 죄수다.

다빌라는 칠레 국영 동회사인 코델코의 동선물책임자였다.

그는 런던 금속시장에서 1억7,400만달러의 손실을 보았으며 그 일을
회사와 상의도 하지 않고 혼자서 임의로 처리한 "불량한"거래인이었다는
것이 그의 죄목이다.

지구촌 반대편에 다빌라와 비슷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사람이 있다.

야스오 하마나카.

스미토모 상사의 동거래인이었던 그는 과거 10년동안 무려 18억달러의
손실을 끼친 것으로 보도됐으니까 다빌라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공룡급이다.

런던이나 싱가포르의 거래인들은 스미토모상사의 발표는 축소된 것이며
진짜 손실규모가 40억달러에 이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 규모야 어찌됐건 스미토모사건의 초점은 이런 일을 과연 스미토모의
주장대로 하마나카가 "혼자서 저지른 것이냐"에 모아져 있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는게 다빌라의 반응이다.

선물거래와 관련, 모든 투자명세 증거금 자금흐름 등 어느 것하나 주변의
인지나 상부의 결재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없으며 팀플레이를 유난히
강조하는 일본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는 것이 다빌라의 주장이다.

동거래를 중심으로 두 사람은 서로 잘 알고 있는 사이다.

그는 "하마나카가 하나의 잘 조직된 팀을 가지고 있었으며 개최되는
회의에서 모든 사안들이 공개적으로 토론되곤 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다빌라는 "내가 일본인들과 상담을 할 때는 임원이 주로 이야기 하고 그
옆에 앉아 있는 다른 일본직원들은 상담내용을 노트에 상세히 기록했다가
다음해에 회의를 할 때면 일년전 얘기됐던 것들을 하나도 빼지 않고 되뇌이곤
했다"고 말함으로써 하마나카가 혼자 거래하다 빚어진 것이라는 회사측
주장을 일축하고 있다.

다빌라의 증언은 계속된다.

"더욱이 상부의 결재가 나지 않은 거래를 일주일 이상 지속시킬 수는 결코
없다. 예외적으로 길어야 한달이다. 그런데 수년씩 방치할 수 있다는 것은
말 자체가 안된다. 우선 투자자금을 대준 은행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

하마나카 주변 사람들의 당혹감도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가와사키에 사는 하마나카는 조용하면서도 검소한 그저 평범한 월급쟁이
였다는 것이 주위의 평이다.

하마나카의 한 친구는 "나는 하마나카의 생활방식, 품성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아직까지도 그 스미토모는 하마나카를 희생양으로 삼고
있는지도 모른다.

"역사의 종언"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일본계 3세 미국인인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최근 한국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하마나카 같은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은 일본인들의 타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때문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정말 그런 것일까.

일본기업들이 최근들어 수난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물의를 빚은 다이와 은행과 다이와 증권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던차에 스미토모 사건이 터졌으니 일본인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스미토모 사건이 어떤 형태로 종결되든 그것은 남의 집안 일이다.

남의 집일을 우리가 이러니 저러니 거론한다는 것 자체가 비예일지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사회에도 다빌라와 하마나카의 출현이
머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니 이름없는 하마나카가 이미 출현해 있지만 우리가 단지 모르고
있을 뿐인지 모른다.

우리나라기업들도 상품선물거래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주가지수선물 시장까지 개설돼 있다.

선물 등 파생상품시장의 긍정적인 면은 적지 않다.

시장의 경우 보험이랄 수 있는 리스크 헤지 수단으로도 활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모디그리아니와 밀러교수의 지적대로 이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점이다.

혜택에는 반드시 비용이 따른다는 경제학적 건실을 설명하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선 비용문제는 뒷전으로 밀어두고 함구한 채
파생상품의 긍정적인면만 강조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특히 주목해야할 것은 선물 등 파생상품거래에는 지렛대(leverage) 효과가
내재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이 지렛대효과 때문에 거래가 잘 풀리는 경우 그 득이 증폭되지만 잘
못되는 경우 그 선 또한 증폭되는 것이 사실이다.

선물거래는 득실 "양면의 날이 선 칼"이라고 할 수 있다.

하마나카도 이 덧에 걸렸던 것이 틀림없다.

요즘같이 주식시장이 침체를 거듭하고 있는 경우 지렛데 효과때문에
손실은 증폭될 수 밖에 없고 따라서 또다른 하마나카의 출현을 불가피하게
만든다.

타산지석은 이런 경우에 딱 들어 맞는 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