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장비산업이다.

한국 반도체 산업을 이야기 할때 빠지지 않는 말이다.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은 3개의 축으로 결정된다.

설계.제조.장비소재 기술 등이 그것이다.

국내업계는 이들 3박자를 갖추지 못했다.

제조기술은 뛰어나다.

설계기술은 아직 선진업체에 뒤지긴 하지만 최근의 기술발전 추세로 볼때
추월은 몰라도 비슷한 수준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장비산업에선 문제가 다르다.

거의 백지상태나 다름없다.

예컨대 지난 94년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은 12%였다.

그러나 95년엔 8%로 뒷걸음질 쳤다.

95년은 16메가D램 공장이 집중적으로 건설된 시기였다.

따라서 기존 4메가D램 공장보다는 첨단장비가 필요했다.

그러나 국내업체는 첨단자가 붙은 장비를 만들어낼 능력이 도통없다.

따라서 국산화율은 뒷걸음질 쳤다.

장비를 독자적으로 만들지 못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를 던져주고 있다.

우선 미국이나 일본업체들의 견제구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선진업체들로부터 질시의 대상이 됐다.

세계 시장 점유율이 30%를 웃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 반도체산업을 견제할 목적으로 장비를 무기화한다면 대책없이
당할 수 밖에 없다.

또 독자적 규격의 반도체도 만들 수 없다.

이는 인텔의 CPU(중앙처리장치)와 같은 독보적 제품을 만든다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한다.

머리 속에서만 그릴 뿐 실제로 만들 수 있는 도구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 256메가D램은 삼성전자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만들었지만 시제품은
일본 NEC가 이보다 먼저 제조했다.

그 이유는 국내에 기초 장비가 모자랐던 탓이었다.

다행히 국내업체들이 이같은 불리한 조건을 이겨내고 256메가D램이라는
고지를 먼저 점령했다.

256메가D램 건은 장비제조 능력이 없는 한국업계의 한계를 보여준 좋은
사례다.

최근 국내업계는 이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 민관 합동 연구기관인 세마테크와 차세대 웨이퍼 규격을 공동
제정키로 했다.

웨이퍼 규격을 정한다는 것은 바로 장비를 만드는 작업이나 같다.

웨이퍼의 크기에 따라 장비가 모두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업체들이 세마테크와 손잡고 설계 제조 장비 등 3박자를 모두 갖춰
명실상부한 반도체 1위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인지 주목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