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발표된 증권제도 개선방안의 기조는 정부의 간섭을 배제해 시장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것이다.

이는 "관치"에서 "자율"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그 기조가 "모든 시장참여자들이 투명하고 공정한 룰밑에서 마음껏 경쟁
하라"는 것인 만큼 지난 86년 영국에서 단행된 증권산업 개혁조치인 "빅뱅"
에 버금가는 "한국판 빅뱅"으로 평가할만하다.

이번 개선안의 강도가 예상수준을 넘은데에는 한국이 OECD가입을 앞둔데다
증권감독원장의 비리를 계기로 증권당국의 증시개입여지를 없애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조성된 때문이다.

이번 개편으로 공개나 증자시스템은 물론 가격결정 메커니즘까지 대변혁을
치르게 됐다.

우선 발행시장의 경우 규제의 대상이 양에서 질로 바뀐다.

높은 수익성과 자산가치를 갖춘 우량주는 증권당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도
공개를 할수 있게 됐다.

그러나 문제도 적지 않다.

내년까지 공개요건을 갖출수 있는 후보기업은 약 200개.

이중 강화된 요건을 연내에 충족시킬수 있는 기업은 20개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 기업들은 공개를 늦추거나 코스닥(장외시장)등록을 추진할수 밖에
없게 됐다.

또 저배당.무배당기업들은 증자를 통한 저리자금조달을 추진할수 없게
된다.

기업공개 공모가 자율화로 빠르면 10월부터는 공모가가 인상될 가능성도
크다.

대주주의 창업이익이 좀더 보장되는 반면 공모주청약예금가입자들은 투자
수익률 하락이라는 불이익을 볼 수 있다.

이로 인한 발행시장의 위축도 우려된다.

한시적으로 세금우대 증권저축제를 도입하겠다고 하지만 이것으로 막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유통시장의 변화도 크다.

빠르면 내년 4월부터 가격제한폭이 10%로 확대됨에 따라 투자자들의 책임이
커지게 됐다.

연속상한가종목수가 줄어들면서 작전세력에 의한 시세조정도 어렵게 된다.

개인단말기에 의한 매매주문 허용으로 미국 기관투자가들도 인터넷을 통해
한국 주식을 사고 팔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도 의미가 크다.

M&A제도 정비에서 눈여겨 볼 것은 강제공개매수제 도입이다.

공개매수가가 최근 1년간 공개매수자가 거래한 최고가격으로 결정된만큼
특정기업 M&A에 따른 경영권 프리미엄을 일반소액주주들도 대주주와 같이
나눠 받을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점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전체 발행주식의 과반수이상에 대해 공매매수청약권을 부여해야
하는 만큼 M&A비용 급등은 명약관화하다.

일부에서는 이번 개선안으로 불공정한 M&A는 억제하겠지만 당분간 M&A를
통한 사업구조재구축 바람을 위축시킬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증권산업은 이제 미증유의 무한경쟁체제에 돌입하게 됐다.

주식위탁수수료 자율화로 인수기능이 중요해지면서 대기업 그룹계열인
5~6개 대형증권사와 계열사가 없는 나머지 증권사와의 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다.

증시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한 기업들간의 납입자본이익률및 배당수준, 주가
높이기 경쟁도 치열해질 것이다.

상한한가폭이 넓어지고 "당국"도 더이상 보호기능이 없어져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특히 이번 증권제도 개선책의 기조는 은행과 보험으로도 이어지게 돼있다.

금융산업의 춘추전국시대 개막을 알리는 전주곡이 이미 울려 퍼진 셈이다.

< 최승욱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