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는 페라리 란치아 람보르기니 부가티와 같은 명차만을 고집하는
전문 스포츠카 메이커가 많다.

그 중에서도 부가티는 예술과 자동차기술이 가장 잘 조화된
자동차메이커로 알려져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창립자 에토레 부가티의 자동차에 대한 열정과 예술적
창작열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부가티사를 세운 그는 1881년 프랑스의 한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심미주의 예술가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고 자라났지만 예술보다는
자동차기술에 매료되어 자동차기술사의 길을 걷기 시작, 1909년
자동차회사를 세우게 된다.

그 후 1947년 사망할 때까지 7,500여대의 자동차를 만들었고, 그중
1,800여대만이 남아 현재 수집가와 애호가들 사이에 최고의 예술품으로
평가되면서 고가로 매매되고 있다.

그러나 당시의 돈벌이 보다는 최고의 예술적 자동차를 만들려고
하는 고집으로 경영에는 실패하여 그의 사망후 부가티사는 자동차를
생산하지 못하게 된다.

부가티가 사망한지 40년후인 1987년, 이탈리아의 한 사업가에 의해
부가티는 다시 태어난다.

이때 부가티의 예술적 자동차기술을 이으려는 시도에 의해 탄생된
자동차가 바로 EB110 GT이다.

EB110 프로젝트는 89년초 람보르기니 자동차를 만들었던 스탄자니
기술팀과 마젤로 간디니의 디자인팀에 의해 착수되었다.

그러나 최고의 자동차예술을 완성하려는 일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여러번의 디자인 변경에 의해 91년9월14일 파리에서 에토레 부가티의
110번째 생일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처음으로 선을 보였다.

EB110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도 바로 에토레 부가티의 110번째 생일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EB110은 세간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 후 디자인을 재수정해 92년 제네바 모터쇼에 출품하게 됐고 93년에서야
생산을 시작하게 된다.

그 때 가격이 22만 파운드(약 2억6,000만원)였다.

EB110은 이름에서도 알수 있듯이 부가티의 예술적 자동차기술을 이으려는
노력이 역력하다.

엠믈렘도 그가 디자인한 고유의 것을 사용했고 부가티의 상징인 말발굽
모양의 라디에이터그릴도 그대로 적용했다.

엔진은 V형 DOHC엔진에 4개의 수냉식 터보차저를 장착해 배기량이
3,500cc 임에도 불구하고 553마력의 파워를 낼 수 있게 했다.

최대의 드라이브감각을 느끼게 하도록 6단의 수동기어를 사용했고,
4륜구동방식을 적용해 타이어의 구동력을 향상시켰다.

이로써 92년5월 이탈리아에서 열린 로드테스트에서 시속 100km 까지의
도달시간이 3.7초로 전대미문의 기록을 세우게 된다.

1년후인 93년에는 차량무게를 200kg 나 줄여 시속 100km 도달시간을
0.3초 앞당겨 순간가속력이 가장 우수한 차의 하나로 알려지게 된다.

최고 시속은 342km 이지만 빠른 속도보다도 안정성 및 정숙성에서
더욱 우수한 차로 평가받고 있다.

고속 주행시 자동으로 리어 스포일러가 트렁크부분으로 올라와
주행안정성을 높여주며 빠른 스피드에서도 자동차안에서 조용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을 정도다.

김상권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장>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