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년 북한이란 존재는 아무도 실체를 알수 없는 사막속의 신기루처럼
환상화되어 왔다.

그리하여 한반도 안팎에서나 지구촌에서 사고와 행태를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대가 되었으며, 더욱 그 장래 예측은 백인백출이랄
만큼 종잡을수 없는 특이한 존재다.

요 며칠도 매체마다 북한 관련 뉴스를 쏟아내고 있다.

하나 거기에는 일정한 흐름이 없어서 어디서 시작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방향조차 간파할수 없을 정도로 무원칙하다.

가령 나진-선봉 투자설명회에 남한 기업인 무비자 참가 허용이라는 북한
대외경제위 부위원장의 일본 발언이나, KEDO(한반도 에너지기구)묘향산
회의의 한국 정부대표 공식참가 소식은 확실히 음에서 양을 지향하는
바람직한 흐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동시에 김일성 2주기 전후의 침통한 분위기나 언제건 까부수겠다는
군부의 협박조 기념사, 그 뒤도 연이은 귀순자 증언에 비친 비인도적 참상은
외부인으로 하여금 과연 평양의 시계바늘이 제 방향으로 도는지조차 의심케
만든다.

한 시점의 단면뿐 아니라 일정 기간을 두고 추세를 보려 해도 전진 퇴보,
좌회전 우회전이 원칙없이 반복돼 한치앞을 내다보기 힘든 혼돈, 그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북한의 실상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지구상 누구와도 견주기 어려운 특성의 북한을 지척에 두고
관찰-분석-평가에 대화를 하며 장래를 논하도록 운명지워진 남한으로선
남다르게 각오를 새롭게 하지 않고는 장래가 없다.

이 점에서 관계당국 뿐 아니라 일반국민도 마찬가지다.

뒤얽힌 북한문제에 접근함에 있어선 무엇보다 다음 몇가지 기본 전제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첫째가 역사 공동체로서의 동족 의식이다.

그 토대위에서만 재통일은 피할수 없다는 확인이 가능하다.

그 전제가 있기에 대북한 문제에서 한국은 미-일-러-중, 그밖의 어떤
나라들과도 다른 위치에 설수 있는 것이다.

둘째 그런 동족의식과 재통일의 욕구 때문에 우리는 공명심에 사로잡혀
통일을 서두르지 않으며, 통일로 가는 과정 방법상 희생과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신중성이 요구된다.

북의 사정이 핍박할수록 승공의 시각에서 이를 활용해야 한다는 충동을
느낄수 있다.

그러나 통일 후로도 수천년을 함께 살아야할 동족이기에 희생은 되도록
최소화해야 한다.

셋째 위의 두 전제를 확인한 다음 북한은 물론 재선을 의식한 클린턴
행정부, 앞으로 있을수 있는 중국이나 러시아의 독선적 접근 시도에
우리는 비로소 흔들리지 않고 합목적적으로 대응할수 있는 것이다.

KEDO를 통한 북한원전만 해도 그렇다.

한국의 부담은 건설비 56억달러에서 70억달러에 이르리란 계산이다.

이 예상을 초월하는 지출에 겁을 먹고 거부하는 태도도 바람직하지
않으려니와 실리 계산과 응분의 발언권 강화가 선행되어야 함은 필수다.

유훈 통치부터가 이변이다.

더욱 2년이 넘었다.

이변은 오래 지탱이 안된다.

그러나 그럴수록 금주 영수회담등 기회있을때 마다 흥분하지 말고 길게
보면서 차분히 대응해 가길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