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문 <현대엘리베이터 사장>

지난 30여년간 우리 경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한강의 기적"이란
찬사를 들을 만큼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여 이제는 선진국 문턱인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를 열었다.

많은 학자와 전문가들이 21세기 발전된 사회상에 대한 전망과 의견을
내놓고 있으나 OECD가입을 목전에 둔 국민소득 1만달러 국가라는 자부심과
새로운 세기를 맞는 설렘으로 인해서인지 별다른 노력없이도 이룰 것만
같은 느낌을 갖게하는, 대부분 장미빛으로 채색된 희망적인 관측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음을 알수 있다.

얼마전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20년에는 우리나라가 세계 7대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60-70년대 배고픔을 달래며 국내외의 산업현장에서 피와 땀을 흘려
성장의 기반을 만들고 오늘의 부를 세운 세대에게는 21세기의 비전이
가슴 뭉클한 승리의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아직도 선진국이 되기엔 부족한 점들이 너무나 많이 눈에 띈다.

그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경제규모에 비해 도로 항만 철도등
사회간접자본이 제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상시적으로 전국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교통난, 상습적인 정체로
문제를 일으키는 항만시설 등은 제품경쟁력 뿐만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외국관광객과 투자자들의 발길을 다른 나라로 돌리게 하는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간접자본 투자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인구및 산업의 적정배분이 고려된 국토종합개발계획이
조속히 진행되어 선진국을 향한 발걸음에 박차를 가하여야 한다.

비근한 예로 독일은 1930년대 히틀러가 국토를 거미줄같이 연결하는
아우토반(고속도로)을 건설한후 경제가 급속히 성장했으며, 미국의
경우에도 1950년대 아이젠하워가 인터스테이트(고속도로)를 건설하고
나서 세계 최강의 선진국으로 도약했음을 들수 있다.

두번째로는 의식의 선진화를 들수 있다.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온 결과 우리의 의식속에는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 따지는, 완벽한 일의 추구보다는 모든 것을 성급히 처리하려고
하는 단기 졸속주의가 내재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와 같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어처구니 없는 사건들은 우리 의식속의 단기 졸속주의를 극단적으로 보여준
일들이라고 할 수 있다.

몇년전 현대엘리베이터는 미국 LA컨벤션센터의 에스컬레이터 25대를
수주받아 납품 설치한 적이 있다.

그 당시 설치현장에 LA시청 및 설계감리회사 등에서 파견된 3명의
여자 감독관이 있었는데 그들의 기준과 원칙이 너무나 까다로워
설치과정에서 대단히 애를 먹었으며,의장품 등은 이들 감독관들이
만족할 때까지 몇번씩 다시 제작해야만 했다.

결과적으로 현재 운행되고 있는 에스컬레이터는 세계적인 엘리베이터
회사의 제품에 견주어 결코 뒤지지않는 최상의 제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처럼 원리와 원칙을 적용하는 일들은 어떤 면에서는 답답하고
불필요한 절차처럼 보이지만 최종적으로는 이러한 자세가 최고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그 세 감독관의 원칙에 입각한 철저한 검사가 설치 당시에는
까다로운 절차였지만 지금에 와서는 1년에도 크고 작은 지진이 끊이지
않는 LA에서 컨벤션센터 건물과 그 안의 시설물들을 튼튼히 보호하는
기둥이 된 것이다.

이에 덧붙여 최근 더욱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쾌적한 환경조성 또한 매우
중요한 과제다.

우리는 그동안 단기적인 성장만 추구한 나머지 환경문제는 매우 등한시해
왔다.

그러나 환경은 우리의 사활이 걸린 매우 중요한 이슈이다.

근래 자주 발생한 오존경보, 강과 호수 그리고 연안바다가 썩어가는
환경위기 상황이 지속된다면 아무리 고도성장을 한다고 해도, 아무리
국민소득이 높다고 해도 그것은 이미 제 살을 깎아먹는 마이너스
성장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국토는 우리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가야 할 곳임에도 불구하고 현재와
같은 환경파괴가 계속된다면 1세기 후에 이 땅은 폐허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캐나다가 천연자원이 풍부한 광활한 북쪽 삼림지대
및 툰드라지대를 개발하지 않고 후손들을 위해 보존해 두는 것과 미국이
환경파괴를 이유로 지하자원이 풍부한 서부 모하비사막 등을 개발하지
않고 있는것은 본받아야 할 일임에 틀림없다.

미국내 주요 도시에 가보면 곳곳에 나무들이 건물을 가리고 있어 언뜻
보기에는 시골과 같은 인상을 받는데, 비행기를 타고 내려다 보면 수풀속에
건물들이 촘촘히 박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도시 곳곳에 짙푸른 녹지공간이 조성되어야 하며 이미 조성된
그린벨트는 훼손됨이 없이 지키고 가꾸어 쾌적한 환경조성을 통한 삶의 질
향상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21세기 첫발을 내딛는 순간 우리 주변환경은 더욱더 빠른 속도로, 더욱더
큰 폭으로 변화할 것임이 분명하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 각기업들은 "무한경쟁"이라는 개념을 확산시키고
있다.

이 무한경쟁시대의 경제환경에 걸맞게 우리에게는 보다 장기적인 안목과
미래를 준비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사회간접자본 확충과 의식의 선진화, 깨끗한 환경조성 등은
21세기의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중요한 발판이 될 것이며, 우리 모두가
새로운 각오로 임해야 할 우리의 과제인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