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성공했다] 김동환 <세아실업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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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아실업 김동환사장(40)은 "문구업계의 신데렐라"로 불린다.
필기구 반디라이트펜을 본격 생산한지 채 1년도 안돼 일약 메이저 볼펜
업체로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양산 첫해인 95년 매출이 40억원.
올해 매출은 수출 100억원을 포함, 120억원이 넘어설 전망이다.
반디라이트펜은 볼펜끝에 발광다이오드(LED)를 부착, 어둠속에서도 편리
하게 글씨를 쓸 수 있는 필기구.
반디라이트펜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인기가 있다.
현재 미국 일본 유럽지역등 25개국에 수출중이다.
그것도 국내판매가인 3,500원보다 3배가량 높은 가격으로.
이제품은 95년 도쿄문구전시회에서 올해의 제품상을, 전일본문구협회로
부터는 올해의 소비자상을 각각 수상했다.
올해는 제네바국제발명품경진대회에서 은상을 받았다.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97년에는 볼펜 한 품목으로 매출 200억원을 올려
국내 최대 볼펜업체로 발돋움할 겁니다"
김사장이 제품을 생산하기 전에 가장 어려움을 겪은 것은 볼펜제조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던 점이었다.
주위의 냉소에도 불구하고 수천번의 실험을 거쳐 3년만에 첫 제품을 탄생
시켰다.
그러기까지 그를 말없이 뒤에서 도와준 이가 있다.
문화연필의 박덕신사장이 바로 그다.
박사장은 볼펜제조에 대한 기본노하우를 그에게 아무조건없이 가르쳐 줬다.
"홀로 서서 크게 될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또 다른 문제는 디자인이었다.
아무리 성능을 좋게 만들어도 모양이 엉성해서 상품이 되지 않았던 것.
이때 그가 찾은 곳은 산업디자인포장개발원.
포장개발원의 지도를 받아 디자인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갔다.
지난해에는 우수디자인제품으로 통상산업부장관상을 수상할 정도로 이제는
최고디자인 볼펜을 생산하고 있다.
87년 단돈 4만원으로 가스총보따리장사를 시작하면서 그의 인생향로가
바뀌었다.
인신매매 떼강도등으로 흉흉해진 사회분위기덕에 그는 이장사로 한달만에
3,000만원을 벌어 지금의 세아실업을 세웠다.
이때는 수갑 가스분사기등 경찰장비를 만들었다.
그러던 91년 어느날 야간에 경찰들이 어깨와 목사이에 손전등을 끼우고
어렵게 뭔가를 쓰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또다시 전환기를 맞이했다.
손전등과 볼펜기능을 하나로 결합한 필기구를 만들면 잘 팔릴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던 것.
"아이디어제품은 아무리 좋아도 알려지지 않으면 무용지물입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게 세계를 무대로 한 홍보플레이였습니다"
김사장이 반디라이트펜을 단기간에 세계적 히트상품으로 만들 수 있었던
비결이다.
김사장에게는 세계 각국의 전시회가 세계언론과의 미팅장소인 셈이다.
그는 전시회라면 국내외를 불문하고 빠짐없이 참가한다.
전시회참가때마다 일본NHK 미국CBS등 해외유수언론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효과적으로 세계시장을 공략할 수 있었다.
또하나의 비결은 기존사고의 틀을 깬 제품개발전략.
볼펜업체들이 대부분 잉크의 질로 우위를 다툴때 김사장은 볼펜기능으로
승부를 걸었던 것.
"2000년내 수출 1억달러를 달성, 세계적인 볼펜업체로 자리를 굳힐
것입니다"
김사장의 눈은 이미 세계를 향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17일자).
필기구 반디라이트펜을 본격 생산한지 채 1년도 안돼 일약 메이저 볼펜
업체로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양산 첫해인 95년 매출이 40억원.
올해 매출은 수출 100억원을 포함, 120억원이 넘어설 전망이다.
반디라이트펜은 볼펜끝에 발광다이오드(LED)를 부착, 어둠속에서도 편리
하게 글씨를 쓸 수 있는 필기구.
반디라이트펜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인기가 있다.
현재 미국 일본 유럽지역등 25개국에 수출중이다.
그것도 국내판매가인 3,500원보다 3배가량 높은 가격으로.
이제품은 95년 도쿄문구전시회에서 올해의 제품상을, 전일본문구협회로
부터는 올해의 소비자상을 각각 수상했다.
올해는 제네바국제발명품경진대회에서 은상을 받았다.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97년에는 볼펜 한 품목으로 매출 200억원을 올려
국내 최대 볼펜업체로 발돋움할 겁니다"
김사장이 제품을 생산하기 전에 가장 어려움을 겪은 것은 볼펜제조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던 점이었다.
주위의 냉소에도 불구하고 수천번의 실험을 거쳐 3년만에 첫 제품을 탄생
시켰다.
그러기까지 그를 말없이 뒤에서 도와준 이가 있다.
문화연필의 박덕신사장이 바로 그다.
박사장은 볼펜제조에 대한 기본노하우를 그에게 아무조건없이 가르쳐 줬다.
"홀로 서서 크게 될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또 다른 문제는 디자인이었다.
아무리 성능을 좋게 만들어도 모양이 엉성해서 상품이 되지 않았던 것.
이때 그가 찾은 곳은 산업디자인포장개발원.
포장개발원의 지도를 받아 디자인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갔다.
지난해에는 우수디자인제품으로 통상산업부장관상을 수상할 정도로 이제는
최고디자인 볼펜을 생산하고 있다.
87년 단돈 4만원으로 가스총보따리장사를 시작하면서 그의 인생향로가
바뀌었다.
인신매매 떼강도등으로 흉흉해진 사회분위기덕에 그는 이장사로 한달만에
3,000만원을 벌어 지금의 세아실업을 세웠다.
이때는 수갑 가스분사기등 경찰장비를 만들었다.
그러던 91년 어느날 야간에 경찰들이 어깨와 목사이에 손전등을 끼우고
어렵게 뭔가를 쓰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또다시 전환기를 맞이했다.
손전등과 볼펜기능을 하나로 결합한 필기구를 만들면 잘 팔릴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던 것.
"아이디어제품은 아무리 좋아도 알려지지 않으면 무용지물입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게 세계를 무대로 한 홍보플레이였습니다"
김사장이 반디라이트펜을 단기간에 세계적 히트상품으로 만들 수 있었던
비결이다.
김사장에게는 세계 각국의 전시회가 세계언론과의 미팅장소인 셈이다.
그는 전시회라면 국내외를 불문하고 빠짐없이 참가한다.
전시회참가때마다 일본NHK 미국CBS등 해외유수언론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효과적으로 세계시장을 공략할 수 있었다.
또하나의 비결은 기존사고의 틀을 깬 제품개발전략.
볼펜업체들이 대부분 잉크의 질로 우위를 다툴때 김사장은 볼펜기능으로
승부를 걸었던 것.
"2000년내 수출 1억달러를 달성, 세계적인 볼펜업체로 자리를 굳힐
것입니다"
김사장의 눈은 이미 세계를 향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