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평호를 끼고 10여분 남짓 구비진 산길을 달리면 편안한 산기슭에
옹기종기 처마를 맞대고 앉아 있는 마을이 있다.

배꽃이 환한 초저녁 동구밖 개 짖는 소리만 공허한 이 한적한 산촌의
이름은 경기도 설악면 탐선리.

이곳에 5일장이 서는 날이면 정미소 문이 활짝 열리고 경운기 돌아가는
소리에 볏짐 부리는 농부들의 목소리가 활기차다.

장마당 근처 좁은 신작로는 왁자지껄한 저자거리로 변하고 뜨내기
봇짐장수들은 저마다 목 좋은 터를 잡느라 부산하다.

행여 뒤질세라 부지런한 부인네들이 새벽부터 이골짝 저골짝에서 서둘러
이고 나온 보따리를 풀어 장을 연다.

그럴 때마다 수런거리는 소리, 물건 흥정하는 소리에 아침잠을 설치곤
하지만 샛바람 냄새가 몸에 밴 여인들의 진지한 수작들이 싫지 않다.

한푼이라도 더 받겠다거니 덜 주겠다거니 하기도 하고 까닭없이 남의
물건에 생트집을 잡기도 하지만 결국은 웃으며 거래를 끝내는 그 푸근한
인간미를 대하면 문득 유년시절 어머니 치마폭을 잡고 구경하던
옛 시장풍경이 아스라하게 떠오르며 행복해진다.

몇되의 보리, 명절에도 양껏 쓰지 못하고 아껴두었던 찹쌀이니 콩
깨등의 곡물이 긴 여름 쪼들리는 농가 살림에 얼마나 요긴하게 쓰이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오가 지나 장이 웬만큼 파하면 펑퍼짐한 몸매로 그늘진 추녀밑에
둘러 앉아 정성껏 헤아려보는 몇장의 지폐가 더없이 흐뭇한 아낙들의
땀 밴 얼굴을 보노라면 분복대로 소신껏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지닐
수 있는 경건함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넉넉치 못한 살림속에서도 비굴하지 않았고 의복이 허술해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으며 비록 교육은 받지 못했으나 사람으로서의 예와 도리를
저버리지 않던 것이 한국어머니들의 자세가 아니던가.

흡족치 못할 망정 비축해 두었던 곡물들을 모두 처분하고 모퉁이
국밥집에 들러 선 채로 막걸리 한사발을 들이켜고 돌아가는 시골아낙의
모습을 보며 과소비 풍조와 그에 따른 막대한 로열티 지불로 흔들리는
요즘의 우리 경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