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지지부진했던 공기업의 민영화가 재차 활기를 찾고 있다.

이는 지난달 17일 "공기업의 과감한 경영혁신과 민영화를 추진하라"는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이에따라 오는 8월까지는 그 방안이 마련될 전망이다.

공기업 민영화문제는 지난 93년 의욕적인 제4차 민영화계획(94~98년)이
발표된던 당시의 정부의지와 여론의 관심을 회고해 볼때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당시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규제완화와 함께 강력한 개혁의지로
출발했던 민영화 계획은 추진범위나 추진속도,그리고 추진내용면에서
종전에 비해 크게 발전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강력했던 정부의 의지는 불과 2년이 채 안돼 식어버린
꼴이 됐다.

이때문에 94년과 95년 사이에 전체 민영화 대상 52개 공기업중에서
16개가 민영화가 끝났고 6개가 부분적으로 추진되는 데 그쳤다.

그나마 민영화가 완료된 공기업중에서도 경영권을 이양하는 본격적인
성격의 것은 대한중석 한국비료등 7건에 불고하다.

나머지는 일부주식을 매각하는 부분 민영화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분석된다.

더욱이 4차 민영화계획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몇몇 매머드급 대형
공기업의 경우 사정은 더하다.

한국중공업 가스공사 담배인삼공사등은 여러가지 방안만이 논의되고
있을뿐 민영화의 구체적인 방향조차 정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이같은 점들을 감안할 때 그동안의 민영화 추진실적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모두 저조한 수준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렇다면 그토록 과감하게 추진할 계획이었던 공기업 민영화가 왜 이처럼
용두사미격이 됐는지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당시 정부의 의욕에 비해 민영화 추진에 관한 철저한 준비가
미흡했던 점을 가장 큰 요인으로 들 수 있겠다.

이같은 현상은 민영화를 추진하던 초창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부는 이동통신 한국비료등의 민영화 과정에서 제기된 여론의
비난을 감안해 94년7월에 민영화계획의 보완대책을 강구한 바 있다.

이때 민영화 추진을 위한 특별법 제정도 검토한 바 있지만 결국
백지화되고 말았다.

외국의 민영화사례를 들여다 보자.

프랑스등 많은 국가가 민영화 추진법을 제정하고 여기에 기초한 객관적인
제3의 추진기구를 구성해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와같은 민영화의 추진체계는 부처이기주의, 경제력 집중, 특혜시비등이
강하게 제기되는 우리의 실정에 비춰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다음으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공기업의 민영화에 대한 정책의지가
약화된 점이다.

한국중공업 가스공사 담배인삼공사등 일부 대형 공기업의 경우는
매각규모가 워낙 커 경제력 집중의 억제, 재계의 위상변화를 의식한
과열경쟁등을 시원하게 해소할 수 있는 방안모색이 여의치 않았고
지방자치단체장및 국회의원 선거등을 치르면서 민영화에 대한 의지가
크게 약화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면 이같은 상황하에서 민영화는 앞으로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

한마디로 결단이 필요하다고 본다.

대형 공기업을 민영화하면서도 93년도 민영화의 계획의 주요전제인
"주인있는 민영화" "경제력 집중방지"라는 두마리의 토낄을 잡는
묘안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동안 민영화에 대한 논의는 과거 어느때보다 충분히 논의됐기
때문에 이제는 민영화 대상기업별 특성을 고려한 용단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된다.

우리속담에 "망건쓰다 장 파한다"라는 말이 있다.

언제까지 논의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급격한 국제 경제.사회의 변화속에서 경제의 효율성 제고라는 민영화의
목적을 달성한다는 차원에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본다.

지금까지 추진하지 못하고 지연된 기업에 대해서는 그동안 다각적인
검토를 토대로 어떠한 형태로든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다.

즉 절차상 시간이 더 소요되는 기업에 대해서는 확실한 추진일정을
밝히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민영화의 방향전환이라는 결단도 필요하다고
본다.

보다 솔직하고 투명한 정책추진을 통해 사회적 비용(social cost)를
최소화하고 정책추진의 신뢰성을 회복해야 한다.

민영화의 핵심은 대상기업의 지배구조를 지배주주로 할 것인가,
전문경영체제로 할 것인가에 있다.

양자 모두 적지 않은 장단점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대상기업 영위산업의
특성에 따라 장기적인 안목에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경제력의 집중을 지나치게 의식한 결정은 사안에 따라서는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자체에 대한 회의론도 나오고 있으나 그도안 충분히 논의했기 때문에
이제와서 "공기업이 효율적이냐, 민영화가 효율적이냐"라는 원론적 논의는
실익이 없을 것이다.

지금은 민영화를 어떻게 우리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추진할 것인가에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끝으로 규제완화나 공기업의 민영화 같은 개혁성격이 강한 정책추진은
면밀한 검토를 토대로 한 강력하고 확고한 정책적 의지가 성공의 요체가
됨은 선진국의 사례를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아무쪼록 8월까지 마련될 "공기업 혁신방안"(가칭)에는 이같은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 시원한 공기업 민영화의 정책방향이 제시될 것을 기대해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