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는 17일부터 4일간 일정으로 제주도 그랜드호텔에서
"대변환, 기술혁신과 미래창조"란 주제로 기술경영인 하계세미나를 갖고
있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강신호 산기협회장, 정근모 과기처장관(김정덕
연구개발조정식장대독), 이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사장, 이상희
국회의원, 서정욱 한국이동통신사장, 정용문 한솔PCS사장 등이 강연에
나서 급격한 경영환경변화에의 대응방안모색과 정보교류등 새로운
기술개발전략수립을 위한 기술경영인들의 역할을 집중조명했다.

첫날 발표된 이관 원자력안전기술원이사장의 강연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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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과 문명의 미래사회 >>

현대는 문명적 변혁기다.

인류혁명으로부터 농업혁명 도시혁명 산업혁명의 시대를 거쳐 이제는
환경혁명의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과학기술의 급격한 발달과 함께 등장한 산업사회의 소비적 패러다임들은
이제 근본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할 시기에 접어들었다.

패러다임의 논의가 시작되어야 할 부분은 17세기 이후의 인류의 역사다.

특히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이 미국식 대량생산체제로 전환하는
부분에 유의해야한다.

미국식 대량생산체제의 특징은 영국식 산업혁명을 한층 더 소비적이고
생산적으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석유와 전기라는 에너지를 발견한 인류는 석탄과 목재라는 에너지를
이용했던 영국식 산업체제를 소비위주의 미국식 생산체제로 전환시켰다.

미국식 대량생산시스템의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는 호환성부품생산과
컨베이어시스템을 결합시킨 "포드이즘"이다.

포드이즘은 대량생산과 이에따른 인류의 물질생활의 극한적 향유라는
전리품을 안겨 주었다.

대신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라는 생활방식은 필연적 결과로 자연파괴라는
매커니즘으로 연결되었다.

서울과 로스엔젤레스 멕시코시티등 인류가 밀집해 있는 도시들은 이미
심각한 대기오염으로 생존마저 위협당하는 상황이다.

세계적 도시들은 모두 이 문제를 안고 있다.

환경파괴는 이미 1만년전 인류가 농경을 시작하면서 시작됐다.

당시에는 농지를 확보하기 위한 대규모 산림채벌이라는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나 대량소비를 위해 에너지소비가 불가피한 산업혁명이후의 문제는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산업사회의 패러다임은 환경이 중요시되는 새로운 문명의
패러다임으로의 전환되어야 한다.

이에앞서 몇가지 고려해야 할 점들을 짚어보자.

우선 과학기술의 모습이 달라져야 한다.

과거의 과학은 문명의 다른 요소들과 밀접한 연관속에서 발달해 왔다.

그러나 17세기이후 과학은 기타 문명적 요소로부터 독립, 인간의 복지에
기여한다는 믿음에 의해 더욱 보강되었다.

이러한 패러다임은 세계 1,2차대전을 거치면서 회의를 낳기 시작했다.

과학이 결코 선일 수 만은 없을 뿐만아니라 인류를 파멸로 인도할수있다는
의심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과학이 지구환경 전체와의 연관성을 중시한 바탕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두번째 근대 과학기술을 뒷받침해온 세계관의 변혁이 절실하다.

근대과학기술은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사상관"과 베이컨의 "자연지배의
이념"을 바탕으로 하고있다.

두 사람은 인간을 자연의 외부에 위치한 독립자로 간주했다.

그러나 인간이 자연의 일부요, 지구도 우주도 생명체이며,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시작해야만 자연과 인간은 공존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삶의 방식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현재 인간의 삶은 문명의 개념, 즉 소비가 주축이 되어있다.

문명학자인 레리스 화이트는 "문명 발전의 정도는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의 크기로 결정된다"고 말한 적도 있다.

산업혁명이후의 이러한 인류의 생활형태는 문명의 개념으로 자리잡고
있다.

문명의 개념에는 원래 이러한 외적 물질적인 의미뿐아니라 내적
정신적인 개념도 포함되어있다.

현대의 환경문제는 궁극적으로 인간혁명을 요구하고 있다.

인류 문명사의 여러차례에 걸친 전환기를 회고해 보면, 인류는 그때마다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해 새로운 생존의 길을 찾는데 성공했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들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음을 인식하고, 인류에
당면한 위기적 환경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