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침략은 영토점령보다 훨씬 더 무섭다.

잠식당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데다 오랜 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저항할 생각을 갖기 어려운 까닭이다.

냉전종식이후 강대국의 문화식민지 정책은 더욱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인디펜던스 데이"는 미국의 문화패권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영화다.

표면적으로는 외계인의 지구침략을 다루고 있지만 밑바탕에는 미국문화의
지구점령의도가 담겨 있다.

제목은 미국의 독립기념일인 동시에 외계인으로부터의 지구독립을 상징하는
용어.

"세계경찰"을 자부하는 미국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짙게 깔려 있다.

"팍스아메리카나"의 야욕은 첫 장면부터 여지없이 나타난다.

스크린이 열리면 달 표면에 꽂힌 성조기가 선명하게 강조된다.

곧이어 직경 550km의 괴비행물체가 지구로 접근하고 통신두절등 대혼란이
일어난다.

백악관이 폭파되고 자유의 여신상은 바다에 처박힌다.

중동 사막지대도 예외가 아니다.

핵미사일도 무용지물이다.

영화는 최악의 위기상황을 설정한 다음 위대한 영웅들을 탄생시킨다.

흑인조종사의 신기에 가까운 활약과 인종을 초월한 인물용사들의 무용담.

그러나 비밀벙커에 은신해있던 미국대통령이 전투기를 직접 몰고 출격하는
대목에 오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방탄막을 뚫고 미사일을 명중시키는 주인공도 대통령이다.

흑백 동질성을 과시하는 설정이야 할리우드영화의 전형적인 수법이지만
초반에 잠깐 비치는 아시아인과 승리뒤의 인디언 환호장면을 삽입한 것은
정도가 지나치다.

사막의 이라크군까지 "미국 우산"아래 감격하다니.

영화사상 최대의 미니어처와 특수효과는 관객의 혼을 빼놓지만, 극장문을
나설때쯤엔 심한 공허감을 느끼게 만든다.

대중문화로 포장된 경찰국가의 지배논리가 섬뜩하다.

(27일 서울 동아 롯데 녹색 그랜드 경원극장 개봉예정)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