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문학의 거장 슈테판 츠바이크의 장편 "태초에 사랑이 있었네"
(김용희 역 하문사 간)와 일본작가 마루야마 겐지의 작품집 "좁은방의
영혼" (김춘미 역 예문 간)이 나란히 출간됐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아름다운 문체와 섬세한 심리묘사로 유명한 작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토대로 사랑의 감정 흐름과 사회현상을
대비시키는데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는 사소하고 우연한 사건들이 우리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지를 탐색한 소설.

장편이라기보다는 중편에 가까운 분량이지만 삶의 굴곡을 따라 훑어가는
작가의 눈길은 예사롭지 않다.

배경은 프랑스의 작은 항구도시.주인공은 아내를 사랑하면서도 생색을
내기 위해 매사에 인색하게 군다.

결국 아내는 그의 그런 태도를 참지 못해 떠나고 그는 전재산을 탕진한
끝에 아내를 찾아 재회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새어나온 말로 다시 아내를
잃는다.

하찮은 우연들이 우리 삶에 복병처럼 숨어서 어떻게 인생항로를 바꾸어
놓는가를 시적인 언어로 형상화했다.

마루야마 겐지의 "좁은방의 영혼"에는 데뷔작이자 아쿠타가와문학상
수상작인 중편 "여름의 흐름"을 비롯 그의 대표적인 중.단편 6편이
수록됐다.

그는 기존언어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영상적인 소설언어를 개발,
낱말이미지의 시각화에 주력해온 작가.

입원실에서의 길고 고독한 생활과 타인기피증에 시달리는 사람, 죽은
친구에 대한 애증과 자성, 침대나 툇마루 팔걸이의자 등 한정된 공간에
갇힌 인물들을 통해 현대인의 무기력과 절망을 조형적인 기법으로 그렸다.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