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과 함께 세계경제의 트로이카를 형성하고 있는 독일경제가 시련을
겪고 있다.

일본경제가 확연한 회복기에 접어들었다는 보도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지만 독일경제는 아직까지 통독의 긴 동면에서 헤어나고 있지 못한것
같다는게 경제분석가들의 일반적인 평가다.

대표적인 경우가 자동차 산업이다.

특히 독일내 3,000여개 자동차 부품업체중 3분의1이 올해는 경영적자에
시달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중 절반은 국외로 생산기지를 옮길것도 검토하고 있다.

이 부문 총고용인원의 20% 정도인 7만5,000명이 5년 이내에 실직할
것이라는게 정부측의 예측이다.

최대 조선업체인 브레머 불칸도 지난 5월부터 파산 절차를 밟고 있다.

2만3,000명 근로자중 상당수가 일자리를 잃게됐다.

저성장과 실업난에 시달리는 독일경제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사례들이다.

독일경제는 지난 2분기 연속 마이너스성장을 기록했고 10%에 이르는
전후 최악의 실업난으로 벼랑끝에 몰려있는 형국이다.

금년 2.4분기 이후 마르크화의 약세로 공장가동률이 늘어나는 등 경기가
다소 호전되는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으나 침체국면을 벗어나는 정도에
불과하다는게 정확한 표현이다.

독일 6대 경제연구소는 금년도 경제성장률이 0.7%에 머물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과거의 눈부신 성장과는 비교도 할수 없는 부진한 성장률이다.

사람들을 더욱 고민에 몰아넣는 것은 내년 경제도 낙관할수 없다는
것이다.

세금인하에 자극받아 민간소비가 늘어날 것이고 따라서 내년도
경제성장률이 2.5%에 이를 것이라는 낙관론도 있으나 베를린 경제연구소등
상당수 연구소들은 그같은 장밋빛 예측을 일축,내년도 성장률이 1~1.5%에
머물 것으로 보고있다.

제네바 소재 경제연구소인 월드 이코노믹 포럼(WEF)은 독일의
국가경쟁력을 조사대상 45개국중 중간정도인 22위에 올려놓고 있다.

스위스 영국등 대부분 유럽국가에 뒤지고 있을뿐 아니라 우리나라보다도
2단계 아래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경제와 세계경제의 핵인 독일이 이런 위기에 빠져든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 전문가들은 문제를 구조적인데서 찾고 있다.

마르크화의 강세나 일시적 경기둔화 때문이 아니라 고임금, 노동시장의
경직성등 사회.경제적 모순 구조가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뛰어난 기술력 국민의 근면성만으로 경제대국의 위치를 유지하기는
역부족이란 얘기다.

실례로 독일 자동차산업의 시간당 평균임금은 57마르크 정도.

이는 일본의 46마르크에 비해 24%,미국의 40마르크보다는 42.5% 비싸다.

이는 유럽연합(EU) 회원국인 영국과 스페인의 2배에 이르는 수치다.

법인세율도 45%로 미국 일본은 물론 프랑스(36.6%) 영국(33%)
스웨덴(28%)보다 턱도 없이 높다.

해고 등 고용조건이 상당히 까다롭고 개인기업이 임금인상률을 결정할
권리도 없다.

주당 근무시간도 35시간으로 세계에서 가장 짧다.

당 전기료도 11.2페니히로 미국의 2배 정도이다.

한마디로 경영환경이 세계에서 가장 나쁜 셈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독일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생산기지를 경영여건이 좋은
국외로 옮겨가고 있다.

지난해 독일기업들의 국외투자액은 전년대비 2배수준인 500억마르크에
이른데 반해 외국인투자액은 130억마르크에 불과했다.

경제성장률이 1%를 밑돌고 기업들은 해외로 이주하고 있으며 실업자는
늘어나는 악순환 고리가 형성된 것이다.

물론 독일정부도 현실을 인식해 연초 실업난 해소, 투자환경 개선,
재정적자감축, 그리고 세율인하를 목표로 세제개혁 방안을 골자로 한
"50 포인트 경제실천계획"을 발표했다.

구조적 문제점을 개선해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기업과 노조를 끌어들여 임금인상을 자제하는 대신 고용을 보장하는
이른바 "고용창출을 위한 대연합전선"도 구축했다.

그러나 이도 화폐통합에 참여하기 위해 재정적자를 줄여 나가야 하는
현실때문에 수요창출을 위한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사용할수 없다는
문제점을 안고있다.

재할인율 인하를 통한 금융정책만으로는 위기탈출의 계기를 마련하기가
어렵다는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물론 수치상 독일경제는 2.4분기 이후 서서히 침체기조를 벗어나고 있다.

그러나 사회가 안고있는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지 않는한 실업은 계속될
것이고 이미 수년간 지속되고 있는 저성장의 굴레를 벗어나기 어렵다는게
독일경제를 아는 사람들의 일반적 시각이다.

<브뤼셀=김영규특파원>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