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유명한 서예가에게 어떤 고객이 글을 청했더니 서예가는 순식간에
글 한 폭을 써주었다.

그 고객은 사례비가 너무 비싸다 싶어서 아까운 듯이 서예가에게
물었다.

(고객)"이 글을 쓰는데 얼마나 걸렸습니까"

(서예가)"30년 걸렸어요"

서예가의 말이 맞다.

순식간에 쓴 그의 작품은 그 사람이 평생을 갈고 닦아온 서도 30년의
결과(엄청난 노하우)이니까.

우리는 다른 사람의 노하우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건축이나 토목공사때 주인은 자재 등의 물건 값은 그런대로 대충
제 값을 쳐주면서 설계비와 같이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전문가의
노하우에 대해서는 오히려 가격을 많이 깎으려 든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노하우는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건설업의 경우 시공 기술은 해외에 나가 명성을 떨칠 만큼
발전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노하우(지식) 산업에 속하는 설계 감리
등 엔지니어링 기술은 거의 외국에 의존할 만큼 발전이 늦다.

우리는 미국과 일본의 컴퓨터 산업에서 비슷한 사례를 볼수 있다.

즉 컴퓨터를 만드는 하드웨어 기술에서는 일본의 후지쓰가 미국의
IBM을 뒤쫓으면서 그런대로 경쟁하고 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에 있어서는 미국에는 빌 게이트와 마이크로
소프트가 있는데 일본에는 이들에 필적하는 경쟁 상대가 없다.

컴퓨터 산업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서로 밀고 당기면서 동반
발전하는 것인데 오늘날 대표적인 지식 산업으로 꼽히는 소프트웨어
기술에서 일본이 뒤떨어져 있으니 컴퓨터 전체가 미국보다 뒤질수
밖에 없다.

하드웨어나 제조업도 중요하지만 이들을 이끌어 갈 소프트웨어나
지식산업은 더욱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의 지식산업은 아직 낙후되어 있다.

낙후되어 있는 우리의 지식산업을 더 빨리 발전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노하우 가치를 값지게 인정해주는
사회적 관행이 앞서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