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간 위험자산비율을 낮추고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전쟁"을
치렀습니다"

23일로 취임 1주년을 맞는 박만수 한국산업리스사장의 민간경험 1년의
변이다.

지난해 국세심판소 상임심판관을 끝으로 관직을 마치고 산업리스 사령탑을
맡은 박사장은 "너무 꼼꼼하다"는 내부불만이 나올만큼 실무를 열심히
챙겨왔다.

이달부터 리스업무가 겸업으로 허용된 종금사수가 투금사의 종금사
전환으로 15개에서 30개로 늘어나 가뜩이나 치열한 리스업계의 경쟁은
더욱 가열되고 있다.

그래서 리스사는 최근 외형을 염두에 둔 덤핑경쟁을 해왔고 부실자산이
급증했다.

여기다 정부가 리스 할부금융 카드 신기술금융등 여신전문금융기관
업무를 98년부터 통합하기로 함에 따라 리스만을 전업으로 하던
단종리스사는 심각한 위기상황에 몰렸있다.

산업리스도 순익이 94년의 222억원에서 95년에는 167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영업환경이 이처럼 변화는 상황에서 산업리스가 외형경쟁보다 수익성에
치중한 것은 의미있는 방향전환으로 받아들여진다.

박사장은 "취임해서 보니 수익성이 낮고 리스크가 너무 커져있었다.

그래서 대기업 중소기업별로 최저수익률한도를 설정해 덤핑을 막았다"고
밝혔다.

이결과 지난 94회계연도에 0.5%에 불과하던 평균순수익률이
95회계년도에는 0.84%로 높아졌다.

모회사인 산업은행과 내부의 반발을 무릅쓰고 "감량경영"도 감행했다.

퇴직자가 생겨도 신규채용을 억제했다.

해외출장도 공식행사 외에는 금지하고 하다못해 비행기의 좌석등급도
낮추었다.

1등석을 이용하던 임원급은 비즈니스로, 비즈니스를 타던 부장급 이하는
이코노미로 "강등"시키기도 했다.

이처럼 "위험자산과 일반관리비는 줄이면서도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은
가능한한 늘렸다"는게 산업리스의 "자기자랑"이다.

박사장 취임후 시행한 리스이동교실이 리스가 무언지 잘 모르는
중소기업들의 호응을 받고 있다는 평가다.

그래서 경인지역의 남동공단 중소기업등만을 대상으로 2차례 실시한
리스이동교실을 앞으로는 구미 창원지역으로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 안상욱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