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12시15분에 부산항의 물결을 가르며 떠난 초고속선 비틀2세는 예정된
시간에서 1분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2시간50분후 하카타(후쿠오카)항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이제부터 4박5일동안 우리 일행 6명은 일본땅 어느 곳이든지 마음대로
누비고 다닐 수가 있다.

우리는 먼저 특급 열차편으로 구마모토로 향했다.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간 규슈레일패스라는 티켓은 부산~하카타간 왕복
선박편은 물론 4박5일 동안 규슈 전 지역 철도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자유승차권이다.

하카타역에서 구마모토까지 편도 특급열차 요금은 2만4,000원 쯤이었지만
이 패스만 있으면 바로 승차가 가능했다.

구마모토성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 침략의 선봉장이었던 가토 기요마사가
지은 일본 3대 성 중에 하나.

시내 중심가에 우뚝 솟아 있어 구마모토의 명소가 되기에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이 성을 짓기 위해 조선의 많은 토공들이 동원되었다는 사실은
과거 한일의 역사를 되돌아 보게 했다.

구마모토성을 뒤로 하고 우리는 지금도 분연과 함께 타오르고 있는
활화산 아소산을 찾아갔다.

정상에 다다를수록 초원 지대는 점점 엷어지더니 마침내 화산흙으로
뒤덮인 대지가 이어졌다.

마침내 산 정상에 올라서니 그곳엔 시커먼 연기를 내뿜고 있는 거대한
검은 구멍이 모든 이들을 삼킬 듯이 푹 꺼져 있었다.

아소산을 넘는 규슈 횡단열차를 탄 뒤 다시 남행열차로 갈아타고 규슈
동부해안 도시 미야자키에서 하룻밤을 잤다.

미야자키는 남국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국적인 도시였다.

하지만 우리가 관광명소라고 찾아간 아오시마섬은 기대만큼 아름답지는
않았다.

일본 최초의 천황 진무덴노가 세웠다는 미야자키 신사와 평화대공원 등을
둘러본 후 우리 일행은 밤차로 후쿠오카로 향했다.

4박5일.

일과 씨름하던 사무실을 잊고 우리는 짧은 휴가를 이렇게 배낭과 보냈다.

처음에는 겨우 일본의 한 지방을 가는데 닷새씩이나 든다고 하니
좀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여행을 끝마칠때쯤 우리는 이것이
턱없는 오만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여행에서 비용은 계획에 맞춰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절약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가이드에 이끌려 이리저리 휩쓸리는 여행보다 뜻이 맞는 동료들과
함께 하는 여행은 분명 우리 생활에 활력소임이 분명하다.

김형렬 <(주)한글과 컴퓨터 기술개발부문 >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