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명창에서 예비명창으로"

젊은 여성소리꾼 유미리씨(25)의 20년 국악경력을 집약한 말이다.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여섯살때 판소리 가야금 무용을 배우기 시작했다.

"어릴적부터 저에게 예능적인 끼가 보였나봐요.

또 어머니께서 국악을 원체 좋아하신 것이 소리길로 들어선 까닭이
됐지요.

초등학교2학년때 국립창극단의 "심청전"에 꼬마 심청역으로 출연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소리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새된 목소리로 판소리나 단가의 한대목을 카랑카랑하게 부르던 그를
국악계나 언론에서는 "애기명창"이라 불렀다.

"조상현 한농선 오정숙등 당대명창들에 사사.

국악인의 엘리트코스라는 국립국악고등학교와 서울대 국악과 졸업.

전주대사습 가야금병창 학생부대상(86년), 동아국악콩쿠르 판소리
학생부금상(88년), 동아국악콩쿠르판소리 일반부 대상(94년)등 수상.

국립국악원 민속반단원으로 임용.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이수자 지정" 이같은 화려한 이력을 가진
그는 언뜻 생각하기에 쉽사리 "예비명창"반열에 들어선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 않아요.

참 어려움과 고비가 많았어요.

초등학교 4학년때 집에 불이 나 거의 파산지경에 이르렀고 6학년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셔 생활이 더 어려워졌지요.

어머니께서 외동딸인 제 뒷바라지를 하시느라 많은 고생을 하셨지요"

한창 예민할 나이에 그를 더 힘들게 했던 것은 10년 가까이 계속된
변성기.

"정말 그만두고 싶었어요.

마땅한 연습장이 없기도 했지만 제 음역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죽어라 소리를 질러댔지요"

어머니의 격려와 무서운 질책이 없었더라면 국악을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고 담담하게 말하는 그에게서 한층 성숙된 소리꾼의 모습이
다가온다.

그는 국립국악원내에서 통통 튀는 신세대다.

단원들 가운데 나이가 가장 어린 데다 밝고 쾌활한 성격,거침없고
논리정연한 자기주장, 자유스런 옷차림때문.

"전통을 강하게 고수하는 국립국악원의 색깔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범위내에서 새로운 창작활동을 하려고 합니다.

한창 시도되고 있는 국악과 양악의 크로스오버에도 관심이 있어요.

그러나 뿌리없는 나무에 열매가 열리지 않듯이 전통을 올바로 배워야죠"

국악을 외면하는 신세대들의 감각을 인정하면서도 그는 한국인들에게는
민족의 신명과 한이 스민 우리음악에 대한 감수성이 내재돼 있다고 말한다.

우리음악이 시대감각의 변화를 어떻게 수용하고 대처해 나갈 것인가가
자신을 비롯한 젊은 국악인들에게 던져진 과제임을 강조한다.

무용 연기 연주 등 가무악을 고루 잘하는 총체적인 소리꾼이 되고
싶다는 유미리씨.

앞으로 우리 국악계를 짊어지고 나갈 젊은 기대주다.

< 송태형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