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준성 <숭실대 교수 / 경제학>

요즘 우리경제가 심상치 않다.

"위기론"까지 나올 정도로 중증을 보이고 있다.

고비용과 저효율의 경제구조, 국제수지적자의 확대, 물가상승, 외채의
증가 등이 이러한 심증을 갖게 하는 현상들이다.

잘 나가던 우리경제가 왜 이지경에 이르렀을까.

누구의 책임인가.

쉽게 진단을 내리고 처방할수 있는 간단한 병은 아니다.

위기에 처한 한국경제를 경제는 좋다가 나쁠 수도 있다는
경기순환론적으로 단순하게 접근 할수도 있지만 그 보다는 그동안 우리
모두가 만들어 낸 자업자득의 결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정부도 기업도 국민도 모두 우리경제를 이렇게 만든데 그 책임이 있다.

정부의 각종 경제정책의 혼선과 임기응변식의 처방 기업들, 특히 경제력
집중과 과당경쟁을 통한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 국민들의 무분별한 과소비
풍조등이 어우려져 나타난 합병증이다.

이제라도 정부는 우리경제의 근본적 체질개선을 위한 정책을 수립해야
하고 기업들도 미시적 차원에서의 이윤추구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나라경제라는 지시적 차원에서의 경영철학을 세워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들의 철학 있는 소비 위기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특히 일부 부유계층의 무분별한 과소비행위는 바로 건전한 가계의
경제행위에 대한 철학이 없는 데서 빚어진 결과이다.

최근 국제수지 적자의 주범이 바로 과소비풍조에 있음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소득이 증가하면 소비도 증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오히려 소비를
지나치게 제한하면 경제가 더 어려워 질수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문제는 소비증가율이 소득증가율을 훨씬
상회하고 있고 소비행태및 구조가 사치성 소비재 구매량이나 외식비의
증가 등 비생산적 과소비행태를 띠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외제 승용차가 눈에 띠게 부쩍 늘어나다.

수백만원짜리 속옷, 수천만원대의 가구및 침대, 고급 골프채, 고급
화장품, 비싼 청바지 등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해외로 보신및 골프여행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일들은 개인소득 1만달러 시대를 사는 국민들의 소비모습이 결코
아니다.

관세청 자료에 의하면 지난 해 통관기준으로 무역수지 적자규모가
사상처음으로 100억달러를 넘어섰다.

이 중 소비재 수입증가가 무역적자의 주요한 요인이 됐다.

올 들어 국내경기가 하강국면을 보이면서 수입신장세가 둔화되고는
있으나 소비재 수입은 계속 증가추세에 있다.

1.4분기중 전체 수입증가율은 16.9%로 지난 해 연간 수입증가율 32%에
비해 무려 15.1%포인트나 감소했으나, 오히려 소비재 수입은 작년 4.4분기의
17.1% 증가에서 올 1.4분기에는 24.7%로 큰 폭으로 증가하였다.

뿐만 아니라 금년들어 관광수지도 국제수지적자의 새로운 주범으로
등장하고 있다.

재경원 자료에 의하면 금년 5월까지 관광수지는 약 30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했고, 금년 말까지 약 36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해외여행 경비증가현상을 무턱대고 나쁘다고 비판할 수는 없다.

세계화시대에 가급적 많이 그리고 자주 해외로 나가 보고 배워야 한다.

이것이 세계화 시대에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지름길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문제는 해외여행 경비중에 필요이상의 유흥비용이나 쇼핑비용이 적지
않다는데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 베불렌은 그의 저서 "유한 계급론"에서 사람들은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과시적 소비를 즐긴다고 이야기 하고 있으며, 이러한
인간의 속물근성을 신랄하게 공격하였다.

최근 우리사회에 확산되고 있는 과소비풍는 다분히 베불렌식의 과시적
소비이다.

내가 땀흘려 벌은 돈으로 내가 쓰는데 왜 이렇게 말이 많으냐라고
반문한다면 할 말도 없다.

또 이것이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자랑하는 장점이며, 이 장점 때문에
한국식 자본주의나 여타 세계의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를 능가하며
체제비교상 객관적으로 우월하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개인적 과소비가 개인으로만 그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개인적 과소비에 기인한 국제수지적자의 증가는 어떤 면에서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이러한 과시적 과소비가 그러한 소비를 할 수 없는
다수의 소시민들에게 열등감과 패배감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열심히 땀흘려 살아 온,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 갈 다수의
건전한 국민들에게 근로의욕을 감퇴시키고 한탕주의를 만연시킴으로써
나라경제전체를 멍들게 할 수도 있다.

우리경제는 과거에 비해 잘살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이제 겨우 개인소득
1만달러에 매년 100억달러가 넘는 빚을 지고 사는 어려운 형편에 처해 있다.

독일과 일본의 전후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도 오랜 기간 국제수지를
흑자로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국민들의 정신에 국산품을
애용하고 근검, 절약하는 건전한 소비철학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치경제학자 갈브레이스는 "풍요로운 사회"에서 미국을 비롯한
선진자본주의국가에 위기가 올 수 있음을 예견하고 바로 그 위기의 실체는
다름 아닌 무질서하고 무분별한 소비문화라고 지적했다.

지금 우리는 우리의 과소비 문화가 한국 자본주의를 위기로 몰고
가지않도록 건전하고 절제된 소비문화를 창조해야 한다.

20세기초 독일 국민을 향해 외쳤던 막스베버의 "검약 및 금욕"의
자본주의정신이 21세기를 준비하는 우리에게 다시금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