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조 고종재위 43년간 서울 시장자리는 모두 384번 바뀌었다.

평균 재임 기간이 1개월 10일 정도였던 셈이다.

이 자리를 두번 역임한 윤치호의 재임기간은 합쳐서 8일, 민영환은 7일,
김홍집은 2일이었다.

하룻만에 바뀐 경우도 몇 차례나 된다.

판한성부사 부윤 판윤 경성부윤으로 명칭이 바뀐 이조 500년 동안의
서울시장 재임기간을 시대별로 보면 매우 의미있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재위 32년의 세종때는 35명, 성종(재위25년)땐 31명이 서울시장을 역임,
재임기간이 거의 1년에 가까운 반면 말기적 현상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안동
김씨 세도정치 기간(64년)에는 3백74명이 릴레이를 연출, 거의 두달에 한번씩
바뀐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인사는 잘해야 본전이라는 말이 있다.

서운해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문민정부 이후도 인사는 말이 많다.

특정지역 특정학교 편중시비는 그전에도 있었던 것이니까 또 그렇다
치더라도, 최근의 정부 인사가 관료조직의 안정을 해치는 일면이 있다고
우려하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우선 인사가 너무 잦다는 지적이 있다.

대폭적인 개각이 연례행사처럼 단행된 것도 결코 잘된 일이라고만
하기 어렵지만, 관료의 중심 계층이라고 할 국-과장급 인사가 너무
잦은 것은 더욱 문제다.

최근들어 신문인사란에 중앙부처 인사가 게재되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다.

재경원의 경우 최근 1년새 3~5번씩 바뀐 국장자리가 적지않다.

이중 일부는 대외개방과 관련, 외국경제인들과도 접촉이 잦은 자리다.

"올 때마다 새 사람을 만나게 된다"는 뼈있는 농담에 얼굴이 뜨거워졌다는
한 과장의 얘기는 결코 그냥 지나쳐서 좋을 성질의 것이 아니다.

정부조직은 국.과장 계층이 제몫을 해주기만 하면 별 문제없이
굴러가게 마련이다.

법의 집행도, 새로운 정책의 입안도 실제로는 이들에 의해 주도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계층이 일을 알만하면 바뀌는 꼴이 돼서는 곤란하다.

복수직급제 도입 등으로 인한 직급의 논란도 부작용의 소지가 크다.

5월말 현재 중앙부처 공무원중 부이사관(3급)은 모두 707명, 이중 국장
심의관 등 "부이사관급 자리에 있는 부이사관"은 263명 뿐이다.

444명이 과장(서기관)자리에 그대로 있으면서 직급만 올라갔다.

이런 양상은 서기관급도 비슷하다.

4,092명중 과장급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서기관이 2,653명이고 나머지
1,439명은 사무관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서 직급만 높아진 이른바
"앉은뱅이 서기관"이다.

여기에 겹쳐 각 직급마다 "대우"라는 것도 생겼다.

2~5급은 승진한지 7년, 6~9급은 5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한단계
위 직급 대우가 된다.

이들 "대우"의 발령은 각부처 내부 회람으로 그치게 돼 있지만, 봉급도
달라지는 만큼 실질적으로 또 하나의 계층이 생겼다고 보는게 타당하다.

"사장님 하고 불렀더니 열에 열 사람 모두 뒤돌아 보더라"는 현미의
노래가 연상되는게 요즘의 관청이다.

"부이사관 과장" "서기관 사무관" "서기관대우 사무관"이 함께 있는
사무실을 찾은 하급기관 민원인은 누구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도
곤혹스럽게 마련이다.

직급의 혼란으로 인한 부작용은 비단 호칭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공무원사회의 기존 인사질서가 뒤흔들리게 됐다는 점이다.

한 자리가 빌때마다 경합자가 종전의 2배 이상으로 늘어난 셈이므로
인사 패턴도 달라질 수 밖에 없게 돼 있다.

복수직급제는 인사적체를 해소하기 위해 나왔다.

고시합격후 15년 정도 사무관을 달아야 하는 부처가 생기는 등 인사체증이
심했기 때문에 호칭 만이라도 올려주자는 의도였다고 풀이할 수 있다.

그러나 직급의 다기화는 근본적으로 조직의 원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계층은 조직의 원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계층은 단순할수록 좋다.

조직내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도 그렇고 조직관리 측면에서도 그렇다.

복수직급제를 도입할 것이 아니라 권한의 대대적인 하부이양을
추진했어야 했다는 반성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길게 보면 직급 논란에 대한 반작용이 반드시 나올 수 밖에 없다.

직급통합 등 전면적인 관료조직 개편을 부를 불씨가 될수도 있고,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할 우려도 없지 않다.

정부의 조직관리와 관련, 또 하나 우려해야 할게 스태프와 라인의
혼돈이다.

스태프, 곧 참모는 참모에 그쳐야 한다.

2차대전에서 일본이 진것은 월권이 심했던 참모위주의 조직이 단위부대
지휘관 중심의 미군조직을 당하지 못한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어쨌든
라인과 스태프의 역할은 명확이 구분돼야 한다.

청와대 비서진이 라인이 아니라 스태프라는 것은 너무도 명확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집행부서인 각 부처보다 훨씬 강한 라인의 기능을
수행해온게 어제 오늘이 아니다.

권위주의 조직에서 힘은 최고 결정권자와 만나는 빈도에 비례하게
마련이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청와대비서진이 막강했다고도 할 수 있다.

문민정부 아래서는 달라져야 할게 당연하다.

그러나 최근들어 나타나고 있는 양상은 반대다.

이달초 관계부처와 협의도 없이 이른바 "21세기 도시구상"이란걸 내놨다가
거둬 들인 정책기획수석의 해프닝도 뜯어보면 그런 단면이 있다.

주요 경제정책이 관변위원회 이름을 빌린 청와대 비서진에 의해
입안-발표되는게 정형화돼 가고 있는 상황에서 각부처의 사기가 오를리 없다.

관료들이 청와대 파견에 안달을 내는 것은 따지고 보면 당연하다.

거기다 승진에서도 유리하니 더욱 그렇다.

힘있는 관서에 근무하면 승진에서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던 관료사회의
불문율도 깨지고 있는 셈이다.

그것이 정부의 조직-인사 관리에 또 하나의 부담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긴 안목에서 정부의 조직-인사 관리전반을 재점검해야할 때가 됐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