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미인이라도 신체조건이나 환경에 맞지 않는 복장을 하고 있으면
어색하기도 하려니와 본래의 아름다움마저 상실하게 된다.

우리 주거양식도 이와 같다.

민족의 문화적 전통이나 규범적 가치가 배제된 가옥구조나 양식 속에서는
고유한 삶의 방식을 지속하기가 어렵다.

70년대들어 근대 산업사회로 전환되면서 가속화된 인구의 도시집중은
심각한 환경문제와 주택난을 발생시켰다.

한정된 국토사정은 기반시설이 불충분한 조건속에서도 집단 주거형태인
아파트 건설을 촉진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외계와 항시 연결될수 있는 입체적 공간구성에 오랫동안 익숙해져
있던 우리에게 평면적 아파트구조나 서구식 호텔의 주택은 기능적으로
개선된 한편으로 적잖은 문화적 충격을 가져왔다.

그 결과 "우리"라고 하는 연대 소속감과 대가족제도가 무너지면서
사회전반에 개인주의를 확산.가속화시켰다.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은 면면히 이어져오던 전통적 맥락으로부터 이탈되어
원래 살던 모습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의식과 주거형태 속에 놓여지게
되었다.

오묘한 자연과 우주의 질서에 순응하며 살았던 우리민족은 집을 짓거나
마을을 형성할 때 반드시 자연경관을 거슬리지 않는 지형을 선택했고 집의
형상 또한 인간의 심성이나 가문이 뿌리를 내리는데 어떤 영향을 줄것인지를
먼저 고려하였다.

집이란 단순히 먹고 쉬며 소유하는것 이상의 보다 정신적이며 고유한
상징성을 의미하였다.

그러한 가치적도는 몇 세대가 더불어 살아가는 생활영역으로서 일체감을
심어주었고, 공동체적 삶을 영위해가는 이웃과는 다름다운 미풍양속으로
결속되어 세계 어느 민족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우리만의 고유한 문화적
규범과 덕목을 키워왔던 것이다.

물질보다는 인간다운 삶을 지향하던 정신적 문화유산은 어느새 낡고
비실용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외국의 풍토와 그들의 신체구조나 생활정서에
맞도록 설계된 실내외 환경들이 무분별하게 선호되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선진화나 세계화는 우리에게 맞지 않는 제도나 풍습까지
받아들여 동질화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