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TWA 항공기사고의 교훈 .. 정석화 <미 시세로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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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화 <미 시세로스틸 사장>
며칠전 뉴욕의 케네디 공항에서 파리의 드골공항으로 직행예정이던
TWA소속 보잉 747-100기가 이륙후 20여분만에 공중폭발한 사고가 있었다.
탑승객 2백30명이 전원 사망했고 마침 며칠후면 아틀랜타에서 올림픽이
시작되는 시기였던 탓에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온통 여론의 초점으로
삼았다.
사고현장 근방을 날아가던 한 개인용 비행기 조종사의 목격담에 따르면
약 8천피트에서 1만피트 상공에서 갑자기 벼락과 같은 폭음과 함께 거대한
오렌지색 불덩이가 생겼고 그 불덩이와 잔해들이 바다위에 떨어지면서
다시 다섯번이나 소규모 폭발이 있었다고 한다.
이 사고는 대형항공기가 공중에서 완전폭발 분해됐다는 점에서 항공사상
처음 생긴 비극이다.
사고의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으나 대략 다음과
같은 가능성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폭발물을 적재한 테러행위가 아닐까 하는 추정이다.
특히 애틀랜타 올림픽중에는 전 미국의 공항이 경계를 철저히 하고 있던
중이었으므로 가장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일반의 추측이긴 하나
지금까지는 확정지을 만한 근거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다음은 소형지대공 미사일을 사용한 범죄행위라는 설이 있고 실제로
미사일이 항공기를 추적하는 궤도를 목격했다는 사람도 나타나 증언을
한적이 있지만 결론지을만한 객관적인 증거가 희박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또 항공기 구조재료의 구조역학적 피로와 파괴현상에 의한 기체파괴가
연료탱크 폭발을 유도했다는 가능성도 있다.
이 비행기는 평균 연령이 25년을 넘는 노후 항공기이다.
정비불량과 정기점검 소홀로 인해 기체의 각종부품, 특히 각종나사의
전단력 파괴로 인한 사고의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도 있다.
그에 비하면 지금 우리나라 항공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747-400은
그야말로 예술의 경지(State of the art)에 오른 최첨단형이고 안전도가
높다고 볼수 있겠다.
이와함께 젯트엔진의 폭발가능성도 들수 있다.
이 엔진폭발은 젯트엔진을 생산하기 시작한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계속 문제가 돼 왔지만 아직도 완전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엔진내부의 소형 금속이 파괴절단돼 엔진전체가 폭발하고 순식간에
연료탱크로 옮겨져 미처 조종사가 감지하고 지상관제소에 연락하기 전에
항공기 전체가 동시 폭발한 경우의 가능성이다.
수십마리의 새떼들이 엔진에 흡입돼도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
클린턴 미대통령도 특별기자 회담을 갖고 미국 국민들이 아직 아무런
단서도 없는 상황에서 섯불리 선입견만 가지고 흥분하지 말 것을
당부하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꼭 그 원인을 규명해 내고 말겠다는
강한 의지를 천명한 바 있다.
그러나 여론은 점점 더 테러쪽으로 기울어져 가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번에 사고가 난 TWA사는 1929년 TAT라는 이름으로 미국 역사상 처음
민간 여객항공사로 출발했고 같은해 인류최초로 대서양 횡단비행에 성공한
찰스 린드버그를 자문위원장으로 영입,미국내 항로는 물론 대서양과
태평양항로 개척에 성공을 거뒀다.
린드버그는 20대초반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대서양 횡단비행에는
단발기를 장거리 비행목적으로 개조해 항로사없이 단독으로 비행하는 것이
최상의 항법이란 결론을 짓고 그대로 실행, 횡단해 냈다.
그당시에는 계기비행장치가 전혀 없었고 그저 별과 나침판과 고도계만으로
추정해 비행을 하는 정도였기 때문에 그야말로 목숨을 건 모험이었다.
그후 부인 앤 모로우와 더불어 대서양과 태평양을 비행, 새로운 항로를
개척함으로써 오늘날 우리들이 쓰는 항로의 기본이 됐다.
후에 TAT사는 웨스턴 에어라인과 합작, 명칭을 TWA로 바꿔 초기
미국항공의 대표적인 민간여객회사로 활약했다.
1940년대 초기에는 당시 미국의 최대 재력가이자 조종사이던 하워드
휴즈가 인수해 경영했으나 늘 적자만 냈었다.
휴즈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휴즈투울사와 휴즈항공사및 MGM영화사등에서
엄청난 흑자를 냈지만 TWA사 경영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최근 들어 TWA사는 다른 항공사들과 경쟁에서 위축됐고 경영의 어려움을
격고 있었으나 오랜 역사를 지닌 항공사로서의 전통과 기술은 계속
유지해왔고 조종사와 정비사 기술은 최고의 수준을 계속 인정받았다.
이번 TWA사 항공기사고를 계기로 우리 항공사들도 다시한번 안전에 관해
재검토하는 기회가 있기를 기대한다.
항공기사고는 기계고장이나 구조적 파괴보다는 조종사나 정비사의 실수가
그 원인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것은 다시말해 확고한 시스템을 개발 확립하고 철저한 교육을 경영의
기본으로 삼아야 됨을 시사하고 있다.
최신기종의 항공기에만 신뢰의 근거를 둘 수는 없다.
기술과 마음의 자세가 항상 갖춰져 있어야 한다.
그리고 경영진은 겸허한 마음으로 서둘지 말고 안전위주로 회사를
발전시켜갈 장기적인 안목도 갖춰야 할 것으로 믿는다.
우리는 70년의 역사를 가진 TWA사의 이번 사고에서 배울점이 너무도
많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25일자).
며칠전 뉴욕의 케네디 공항에서 파리의 드골공항으로 직행예정이던
TWA소속 보잉 747-100기가 이륙후 20여분만에 공중폭발한 사고가 있었다.
탑승객 2백30명이 전원 사망했고 마침 며칠후면 아틀랜타에서 올림픽이
시작되는 시기였던 탓에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온통 여론의 초점으로
삼았다.
사고현장 근방을 날아가던 한 개인용 비행기 조종사의 목격담에 따르면
약 8천피트에서 1만피트 상공에서 갑자기 벼락과 같은 폭음과 함께 거대한
오렌지색 불덩이가 생겼고 그 불덩이와 잔해들이 바다위에 떨어지면서
다시 다섯번이나 소규모 폭발이 있었다고 한다.
이 사고는 대형항공기가 공중에서 완전폭발 분해됐다는 점에서 항공사상
처음 생긴 비극이다.
사고의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으나 대략 다음과
같은 가능성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폭발물을 적재한 테러행위가 아닐까 하는 추정이다.
특히 애틀랜타 올림픽중에는 전 미국의 공항이 경계를 철저히 하고 있던
중이었으므로 가장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일반의 추측이긴 하나
지금까지는 확정지을 만한 근거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다음은 소형지대공 미사일을 사용한 범죄행위라는 설이 있고 실제로
미사일이 항공기를 추적하는 궤도를 목격했다는 사람도 나타나 증언을
한적이 있지만 결론지을만한 객관적인 증거가 희박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또 항공기 구조재료의 구조역학적 피로와 파괴현상에 의한 기체파괴가
연료탱크 폭발을 유도했다는 가능성도 있다.
이 비행기는 평균 연령이 25년을 넘는 노후 항공기이다.
정비불량과 정기점검 소홀로 인해 기체의 각종부품, 특히 각종나사의
전단력 파괴로 인한 사고의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도 있다.
그에 비하면 지금 우리나라 항공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747-400은
그야말로 예술의 경지(State of the art)에 오른 최첨단형이고 안전도가
높다고 볼수 있겠다.
이와함께 젯트엔진의 폭발가능성도 들수 있다.
이 엔진폭발은 젯트엔진을 생산하기 시작한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계속 문제가 돼 왔지만 아직도 완전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엔진내부의 소형 금속이 파괴절단돼 엔진전체가 폭발하고 순식간에
연료탱크로 옮겨져 미처 조종사가 감지하고 지상관제소에 연락하기 전에
항공기 전체가 동시 폭발한 경우의 가능성이다.
수십마리의 새떼들이 엔진에 흡입돼도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
클린턴 미대통령도 특별기자 회담을 갖고 미국 국민들이 아직 아무런
단서도 없는 상황에서 섯불리 선입견만 가지고 흥분하지 말 것을
당부하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꼭 그 원인을 규명해 내고 말겠다는
강한 의지를 천명한 바 있다.
그러나 여론은 점점 더 테러쪽으로 기울어져 가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번에 사고가 난 TWA사는 1929년 TAT라는 이름으로 미국 역사상 처음
민간 여객항공사로 출발했고 같은해 인류최초로 대서양 횡단비행에 성공한
찰스 린드버그를 자문위원장으로 영입,미국내 항로는 물론 대서양과
태평양항로 개척에 성공을 거뒀다.
린드버그는 20대초반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대서양 횡단비행에는
단발기를 장거리 비행목적으로 개조해 항로사없이 단독으로 비행하는 것이
최상의 항법이란 결론을 짓고 그대로 실행, 횡단해 냈다.
그당시에는 계기비행장치가 전혀 없었고 그저 별과 나침판과 고도계만으로
추정해 비행을 하는 정도였기 때문에 그야말로 목숨을 건 모험이었다.
그후 부인 앤 모로우와 더불어 대서양과 태평양을 비행, 새로운 항로를
개척함으로써 오늘날 우리들이 쓰는 항로의 기본이 됐다.
후에 TAT사는 웨스턴 에어라인과 합작, 명칭을 TWA로 바꿔 초기
미국항공의 대표적인 민간여객회사로 활약했다.
1940년대 초기에는 당시 미국의 최대 재력가이자 조종사이던 하워드
휴즈가 인수해 경영했으나 늘 적자만 냈었다.
휴즈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휴즈투울사와 휴즈항공사및 MGM영화사등에서
엄청난 흑자를 냈지만 TWA사 경영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최근 들어 TWA사는 다른 항공사들과 경쟁에서 위축됐고 경영의 어려움을
격고 있었으나 오랜 역사를 지닌 항공사로서의 전통과 기술은 계속
유지해왔고 조종사와 정비사 기술은 최고의 수준을 계속 인정받았다.
이번 TWA사 항공기사고를 계기로 우리 항공사들도 다시한번 안전에 관해
재검토하는 기회가 있기를 기대한다.
항공기사고는 기계고장이나 구조적 파괴보다는 조종사나 정비사의 실수가
그 원인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것은 다시말해 확고한 시스템을 개발 확립하고 철저한 교육을 경영의
기본으로 삼아야 됨을 시사하고 있다.
최신기종의 항공기에만 신뢰의 근거를 둘 수는 없다.
기술과 마음의 자세가 항상 갖춰져 있어야 한다.
그리고 경영진은 겸허한 마음으로 서둘지 말고 안전위주로 회사를
발전시켜갈 장기적인 안목도 갖춰야 할 것으로 믿는다.
우리는 70년의 역사를 가진 TWA사의 이번 사고에서 배울점이 너무도
많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