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우다지 휴간' .. 자본주의 경영-공산주의 기조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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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세계 최대 발행부수를 자랑하며 구소련 공산당을 대변했던 80년
역사의 프라우다지가 자본주의적 경영진과 공산주의의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편집자들간의 조직내부 갈등으로 인해 24일 휴간됐다.
신문 소유주인 테오도르와 크리스토스 이아니코스 형제는 이날 뉴스가 거의
없는 한가한 여름철 동안 신문 발간을 중단하기로 했다며 27일부터 휴간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공산주의의 동지적 결합체인 이 신문 편집인들은 이에 격분해 즉각
항의성명을 발표, 그들의 외국인 사장이 "러시아의 가장 오래된 신문의
독자들과 정기구독자들, 그리고 편집자 집단을 전혀 존중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후 이들 스스로 24일부터 무기한 휴간 결정을 내렸다.
이같은 급작스런 마찰과 휴간의 직접적인 원인은 이날 오전 프라우다신문사
현관앞에서 있은 당혹스럽고도 괴이한 충돌로 인해 야기됐다.
신문사에 상주하고 있던 한 경찰관이 신문 소유주인 이들 형제의 출입을
저지한 것.
왜 경찰관이 신문사 소유주의 출입을 막았는지는 즉각 알려지지 않고 있다.
프라우다지의 편집 간부인 블라디미르 라신은 이를 "내무장관의 도발"
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경찰권을 장악하고 있는 내무장관이 왜 이같은 도발을 했는지에
대한 이유도 불분명한 상태다.
라신은 이 사건이 자본주의 소유주에 대한 편집자들의 울분을 터트리도록
자극했다고 말했다.
지난 92년 그리스의 백만장자인 이들 형제가 신문사의 대주주가 되기전까지
거의 80년동안 프라우다는 구 소련 공산당의 한 공식 조직으로 기능했었다.
그러나 경영권을 장악한 그리스인 형제들은 신문은 산뜻해야 하며, 뉴스
보도는 보다 활기차게 이뤄져야 한다고 지시했다.
무엇보다도, 이들 형제는 왕년의 공산당 기관지로부터 투자한 몫에 대한
약간의 이윤을 얻기를 기대했었으나 그 기대는 무너졌다.
라신은 "신문의 정치적 색깔을 바꾸지 않은 채 이아니코스 형제는 어느
정도의 상업적 성공을 향유하기 원했다"면서 "그렇게 할려면 무엇인가를
바꾸지 않으면 안된가"고 지적했다.
이들 형제는 프라우다가 취재팀을 활발히 가동시켜 생동감있는 기사를
발굴해 쓰지 않고 4면 전부를 논평, 통신기사로 채우거나 창작성없이 TV를
보고 기사를 작성해 넣는 경향으로 인해 신문을 너절하게 만드는데 크게
좌절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26일자).
역사의 프라우다지가 자본주의적 경영진과 공산주의의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편집자들간의 조직내부 갈등으로 인해 24일 휴간됐다.
신문 소유주인 테오도르와 크리스토스 이아니코스 형제는 이날 뉴스가 거의
없는 한가한 여름철 동안 신문 발간을 중단하기로 했다며 27일부터 휴간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공산주의의 동지적 결합체인 이 신문 편집인들은 이에 격분해 즉각
항의성명을 발표, 그들의 외국인 사장이 "러시아의 가장 오래된 신문의
독자들과 정기구독자들, 그리고 편집자 집단을 전혀 존중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후 이들 스스로 24일부터 무기한 휴간 결정을 내렸다.
이같은 급작스런 마찰과 휴간의 직접적인 원인은 이날 오전 프라우다신문사
현관앞에서 있은 당혹스럽고도 괴이한 충돌로 인해 야기됐다.
신문사에 상주하고 있던 한 경찰관이 신문 소유주인 이들 형제의 출입을
저지한 것.
왜 경찰관이 신문사 소유주의 출입을 막았는지는 즉각 알려지지 않고 있다.
프라우다지의 편집 간부인 블라디미르 라신은 이를 "내무장관의 도발"
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경찰권을 장악하고 있는 내무장관이 왜 이같은 도발을 했는지에
대한 이유도 불분명한 상태다.
라신은 이 사건이 자본주의 소유주에 대한 편집자들의 울분을 터트리도록
자극했다고 말했다.
지난 92년 그리스의 백만장자인 이들 형제가 신문사의 대주주가 되기전까지
거의 80년동안 프라우다는 구 소련 공산당의 한 공식 조직으로 기능했었다.
그러나 경영권을 장악한 그리스인 형제들은 신문은 산뜻해야 하며, 뉴스
보도는 보다 활기차게 이뤄져야 한다고 지시했다.
무엇보다도, 이들 형제는 왕년의 공산당 기관지로부터 투자한 몫에 대한
약간의 이윤을 얻기를 기대했었으나 그 기대는 무너졌다.
라신은 "신문의 정치적 색깔을 바꾸지 않은 채 이아니코스 형제는 어느
정도의 상업적 성공을 향유하기 원했다"면서 "그렇게 할려면 무엇인가를
바꾸지 않으면 안된가"고 지적했다.
이들 형제는 프라우다가 취재팀을 활발히 가동시켜 생동감있는 기사를
발굴해 쓰지 않고 4면 전부를 논평, 통신기사로 채우거나 창작성없이 TV를
보고 기사를 작성해 넣는 경향으로 인해 신문을 너절하게 만드는데 크게
좌절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