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 근무하는 김인호씨(29).

지난달 27일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다른 동료들이 여름휴가를 맞아
고향으로 떠날 짐을 꾸리고 있는 시각, 그는 작업공구를 챙겨 공장으로
향했다.

그가 휴가를 반납한 것은 아니다.

영선반에 소속돼 있는 김씨는 라인 보수작업이 주된 업무여서 집단
휴가기간에 일이 몰려있다.

라인 보수는 공장라인이 멈췄을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씨는 휴가철이 오히려 더 바쁜 사람이다.

지난달 27일부터 9일간의 집단휴가에 들어가 전 공정라인이 멈춘
현대자동차 울산 제4,5공장.

이 공장에는 김씨와 같은 처지에 있는 3천여명이 라인 개.보수
작업으로 땀을 흘리고 있다.

더구나 이번 휴가기간에는 1t짜리 소형트럭 포터의 생산라인을
4공장에서 5공장으로 이설하는 작업을 끝내야 하기 때문에 야간작업까지
해야 할 형편이다.

그들에게 휴가는 "남의 나라 얘기"다.

사정은 기아자동차와 대우자동차의 정비부서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이달 5일부터 6일간의 집단휴가에 들어가는 기아자동차의 경우
매일 1천2백여명의 정비민원이 출근할 예정.

하반기에 나올 신차종에 대비, 라인을 새로 깔아야 하고 불량라인을
재정비하는 게 이들의 업무다.

대우 부평공장에서는 라인보수와 신설라인 설치 작업에 정비요원
6백40여명이 투입돼 휴가기간동안 땀을 흘리게 된다.

쌍용은 평택 창원 부평 등 3개 공장에서 시설보전과 4백20여명이
휴가기간을 이용,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자동차업체의 경우 특히 신차종에 대비, 새로운 라인을 설치할 경우
집단휴가기간이 요긴하게 쓰인다.

라인설치는 철저한 보안속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이 기간에 투입되는
설비요원들은 외부인과의 접촉도 일절 금지된다.

대우와 기아자동차가 대표적인 경우.

대우자동차는 이번 휴가기간중 르망 씨에로의 후속차종인 "T-100"의
라인을 새로 깔아야 한다.

기아도 하반기에 나올 포텐샤 후속모델인 "T-3"의 라인설치 작업을
집중적으로 진행할 에정이다.

자동차업체외에 대규모 공장을 갖고 있는 반도체, 중공업 등의 업종
에서도 휴가철이 바쁜 사람들이 있다.

특히 경기하강으로 4~5년만에 처음 집단휴가를 갖는 반도체업종에는
유난히 이런 사람들이 많다.

대우전자 광주공장에 근무하는 최형석씨(31)씨의 경우가 그렇다.

전기 배관공사가 최씨의 주된 업무.

최씨는 예년의 경우 집단휴가철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주로 주말이나
휴일 등 공장이 멈출때를 이용, 틈틈히 이 작업을 해왔다.

그러나 올해는 무려 6일동안이나 공장이 문을 닫기 때문에 이 기간동안
집중적으로 일을 해야 한다.

"남들이 다 휴가를 떠날 때 남아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짜증이
날때도 있죠.

그러나 공장이 완전히 멈춘 이 기간에 집중적으로 일을 마치는 게
효율면에서 높습니다.

평소 시간이 부족해 대충 지나친 부분도 꼼꼼히 점검할 수도 있고요."

최씨는 남들이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는 이달 10일께 휴가를 떠날
예정이다.

대우전자 광주공장에는 최씨처럼 전기 안전공사, 냉각수 교체작업
등으로 휴가기간동안 오히려 바쁜 손놀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1백50여명에 이른다.

삼성전자 현대전자 등도 5~6일간의 휴가를 이용, 부분적인 공장 설비
보수작업을 벌일 계획이다.

같은시기에 집단휴가를 실시하는 중공업, 철강업종도 대부분 휴가기간
동안 공장별로 1백~2백여명씩 투입, 개.보수작업을 벌일 예정이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김수중 부사장은 "휴가를 잊은 채 땀을 흘리는
이들이야말로 산업의 역군들"이라고 말했다.

< 정종태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