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건영은 96년도 도급한도액 5천4백63억원, 도급순위 21위의 1군건설
업체이다.

납입자본금은 8백억원이며 종업원수는 1천20명.

계열사는 8개 건설업체와 12개 주택 유통회사 등 총 20개사이다.

건설업체로는 건영종합개발 건영산업개발 건영건설건설 건영종합토건
건영종합건설 건영토건 등이 있으며 유통업체로는 건영통상 건영유통
건영농산이 있다.

또 하도급거래과 자재거래업체는 어림잡아 5천여개에 이른다.

건영은 지난 77년 11월 대구에 기반을 둔 중소건설업체인
(주)건영주택으로 출범했다.

현 엄상호회장인 부친이 대구에서 상가분양사업을 하다 78년 본사를
서울으로 이전했으며 82년 3월 현재의 (주)건영으로 상호를 변경,
건영그룹의 기틀을 마련했다.

건영이 본격적으로 부각한 것은 80년대 중반부터.

부동산경기가 초호황을 누린 당시 건영은 업계에서는 새로운
아파트건설기법으로 수요층을 사로잡으면서 중흥기를 맞았다.

건영은 당시에서는 생소했던 발코니면적을 넓혀 객실의 공간감을
확보하고 아파트동도 넓게 배치, 기존 설계와 차별화함으로써 인기를
끌었다.

당시 업계는 건영의 이 입주면적배치법을 도입하는 등 업계를 이끌기도
했다.

건영은 또 분당 일산신도시건설의 바람을 타고 또한번 높은 성장세를
타기시작했다.

높은 성장을 계기로 건영은 80년대말과 90년대초 잇따라 유상증자를
실시하며 회사규모를 키워갔다.

94년에는 이같은 성장의 결과로 8천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일약 도급순위
18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잘나가던 건영은 지방화에 따라 지방투자를 늘리고 부동산매입에
치중하면서 94년말부터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95년엔 매출액이 6천억원대로 뚝떨어졌으며 지방에 건설한 아파트도
미분양이 늘어 극심한 자금압박을 받았다.

이처럼 회사가 어려워지자 건영은 자금확보를 위해 보유부동산과
서울방송주식을 처분하기로 했으나 부동산경기침체 등으로 제때에
팔리지 않아 결국 제3자인수의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됐다.

<고기완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