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행이 1차부도까지 난 건영을 다시 살려내 제3자인수에 합의한
배경은 우선 두가지로 볼수 있다.

하나는 "부도후"보다는 "부도전 제3자인수"가 건영측은 물론 주거래은행인
서울은행에도 유리하다는 자체 판단이고 다른 하나는 위기설이 나올 정도로
심각한 경제상황에서 건영의 부도가 미칠 파장을 의식한 정부측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서울은행은 지난해부터 경영상황이 악화된 건영이 좀처럼 회생기미를
보이지 않자 최근들어 부도를 결심했었다.

추가적인 자금지원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자체판단이 섰기때문이다.

따라서 올들어서도 몇차례 부도위기에 처했던 건영에 자금지원을 해준
서울은행은 지난주말 한일은행등에 돌아온 19억원의 어음을 막아주지 않았고
건영은 결국 1차부도를 냈다.

그러나 최종부도처리를 몇시간 앞둔 5일 오전 건영의 엄상호회장은 직접
서울은행을 찾아와 손홍균행장에게 "회사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제3자에게 회사를 팔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자구계획서"을 제시했다.

이에따라 서울은행은 엄회장의 제안을 "접수", 긴급자금을 지원했고
건영은 일단 부도위기를 넘겼다.

따라서 앞으로 건영측이 "자구계획안"을 합의대로 추진한다면 서울은행은
당분간 자금을 계속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최근 2,3일간 건영의 "1차부도->긴급 자금지원->3자인수추진"
과정에서 정부도 보이지않은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제수지 물가 성장등 거시경제 변수들이 모두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시점에서 비교적 건실한 회사로 알려진 건영마저 부도날 경우 내리막
경제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할 것이란 점을 잘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정부가 수수방관만은 할수 없었을 것이란게 관계자들의 얘기다.

물론 청와대나 재정경제원 모두 "우성의 부도처리여부는 주거래은행과
해당기업의 문제로 정부에선 간여할 생각은 전혀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국내은행들은 은행경영에 상당히 영향을 줄만한 사안에 대해서
은행감독원측과 사전에 협의하는게 "관례"인 만큼 이번에서도 은행감독원
측이 정부의 이런 입장을 간접적으로나마 충분히 전달했을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실제로 정부의 한 관계자는 "요즘처럼 경기가 나쁜 상황에서 중견건설
업체인 건영이 부도나면 채권자와 입주자에 대한 피해는 물론 건설업계의
연쇄부도까지 우려된다"며 "서울은행도 건영보다는 국가경제전반을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해 간접적인 설득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어쨋든 건영처럼 "부실기업을 부도내지 않은채 제3자인수하는 방안"이
성공할 경우 이는 부실기업정리의 새로운 모델이 될 것으로 평가된다.

과거 정부의 직접개입을 통해 좌지우지되어 왔던 부실기업정리는
문민정부들어 "주거래은행과 해당기업"의 관계속에서 해결되어왔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대부분 부도후에 주거래은행들이 전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으나 이번에는 부도전에 해당기업이 주거래은행과 협의해서
해결한다는 점에서 일단 새로운 긍정적인 관행으로 평가된다.

< 육동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