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게 사형과 무기징역을 구형한 어제
서울지법의 공판은 당사자들이나 국민에게 잊기 힘든, 잊어서도 안될
충격일뿐 아니라 세계 이목을 모은 사건이었다.

우리가 이런 충격을 딛고 전진하려면 비애국 못지 않게 역사에 대한
배타적 사명감, 애국을 빙자한 자기만의 업보는 냉엄하다는 교훈을
함께 새기지 않으면 안된다.

12.12,5.18거병의 교국명분이 특별법제정을 거쳐 지난 2월 반란죄로
기소되기 까지 16년의 곡절이야 말로 역사 무상을 새삼 일깨웠다.

3월11일 첫공판 이후 구형에 이른 26차례 공판중 검찰 피고 재판부의
종횡무진한 대결은 이 재판이 과연 정당한가를 국민 각자가 한번쯤은
자문할만큼 뜨거운 것이었다.

그 회의엔 두 피고가 대통령이었다는 존엄성, 그 우국지심이 설마
허위였으랴 하는 의외성,역사의 양면성을 믿는 온정적 보수성향이
바탕에 복합적으로 깔렸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그같은 일말의 동정심이 급랭한 데는 사과상자 은폐로 드러나듯
난형난제, 양씨의 축재 마각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설령 동기가 순수하고 자금이 필요했다고 믿는다 해도 수천억 취재는
이해의 한계 넘어다.

기실 쌍방 증언의 신빙성과는 별개로, 10.26후 전-노씨와 추종자들의
행위가 위국충정에선지, 집권욕에선지의 실체적 진실 발견이란 용이한
일이 아니다.

과학적 물증이 없고 증인의 증언이 주가될 때엔 혼란이 더 클수밖에
없다.

게다가 피고들의 행위는 자신의 신념을 옳다고 믿고 행동하는, 이른바
확신범 양심범의 범주로 혼동될 소지가 있다.

따라서 엄벌엔 반론이 따를 여지가 있다.

순환순리 같지만 정권찬탈의 결정적 증언이 끝내 기피됨으로써 그런
증거능력의 한계가 그대로인 상태다.

그렇게 볼때 이 역사적 재판은 실체적 진실발견상의 한계와 동시에
절차적 합법성 구비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후자는 주로 피고측 변호인단의 극렬한 법적 저항이 재판절차에 결함을
유발시킴으로써 공판의 신속진행을 방해하는 고도의 소송전략이다.

그렇다고 문제는 1심선고 후 2심 3심까지 검찰의 공소유지,증거보강과
같은 법률적 사항에 있지 않다고 본다.

왜냐면 이 재판은 어차피 본질에 있어 정치재판 여론재판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실정법의 합법성을 떠나 80년 "서울의 봄"에서 5공으로 이어진
일련의 헌정파괴 과정을 누가 부인하는가.

그러나 그 5-6공 12여년 실정법 형식을 갖춰 쌓은 역사를 누가 부인할
것인가에 핵심이 있다.

그 과정에 형성된 대내외적인 기정사실의 축적을 어찌 처리할 것인가는
다른 시각에서 전-노 양씨의 대통령직을 소급 무효시킬 법리가 있는가로
통한다.

궁하다.

결국 재판에서 실체진실의 한 단면이라도 합법절차 속에 규명 단죄되면
사법의 역할은 끝난다.

그뒤 사면 감형 여부가 대통령의 재량임은 물론이다.

다만 그 결심에 국민의 법감정, 쿠데타의 발본, 지속성있는 정부의 존재
등 정치-여론적 판단이 반영되어야 함은 말할나위 없다.

그런 순리를 알므로 국민이 충격을 삭이는 것 같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6일자).